‘악당 대통령’ 트럼프 시대… 늪에 빠진 미국

입력 2018-12-24 04:01

연말 미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의회는 마비됐고, 연방정부 일부 기능은 정지됐으며 주식시장에도 빨간불이 커져 미국이 통제불능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새해 예산안이 상원을 통과하지 못해 22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일시적 업무정지) 사태가 빚어졌다. 또 갑작스러운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에 반발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이슬람국가(IS) 격퇴’ 담당 브렛 맥거크 대통령 특사가 사표를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얼굴) 대통령이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격분해 제롬 파월 의장 해임을 논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다우지수는 지난주 주간 기준으로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면서 증시 폭락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대혼란의 주범으로 주저 없이 트럼프 대통령을 꼽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은퇴한 4성 장군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을 “악당 대통령(rogue presidency)”으로 몰아붙였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을 “최고의 질서파괴자(Disruptor in Chief)”라고 비난했다. 미 대통령이 군의 최고사령관(Commander in Chief)인 것을 빗댄 표현이다. CNN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워싱턴은 악몽에 빠졌고, 정부는 대혼돈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미국 역사상 가장 혼돈스러운 대통령으로 인해 가장 혼돈스러운 1주일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매체 CNBC는 “다우지수 하락 원인은 트럼프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행정부와 전쟁을 벌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방정부 셧다운은 22일 0시부터 시작됐다. 지난 1월(3일간)과 2월(반나절)에 이은 올 들어 세 번째 정부 업무정지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 시한이었던 22일 0시까지 합의안 마련에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멕시코 장벽 건설 예산 59억 달러가 발목을 잡았다. 민주당은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싶으면 장벽을 포기하라”며 결사항전을 천명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토요일인 22일에도 상원 본회의를 열었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양당은 27일 상원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물밑 극적 합의가 없는 한 셧다운 상태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연말 플로리다 휴가도 취소하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양측은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셧다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슈머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파괴적 분노발작’이 ‘트럼프 셧다운’을 촉발했다”고 비난했다.

이번 셧다운은 정부 기능 일부의 정지다. 9월 말 연방정부 예산의 75%가 통과돼 15개 정부부처 중 국토안보부 교통부 등 9개 부처와 국립공원 등이 이번 셧다운의 영향을 받는다. 연휴기간이어서 피해 규모는 미미하지만 26일부터는 여파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매티스 장관의 자진 사퇴도 충격파를 던졌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사임 서한에서 “당신과 더 잘 맞는 견해를 가진 국방장관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의 사임 소식을 듣고 격분했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5년 지명했던 맥거크 특사도 사퇴에 동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맥거크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증시 폭락 원인으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지목하며 파월 의장 해임을 논의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 해임을 시사한 적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