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왕건 동상, 대고려展에 함께 전시했으면… ”

입력 2018-12-23 21:38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전을 계기로 방한한 한스 마틴 힌즈 전 세계박물관협회(ICOM) 회장. 그는 “남북한 문화기관 사이의 공식 교류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면서 내년 일본 교토 ICOM 총회 남북 공동 참가를 제안했다. 권현구 기자

“북한의 왕건상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독일 출신인 한스 마틴 힌즈 전 세계박물관협회(ICOM) 회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4일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전 개막을 기념해 마련한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했다. ‘고려 1100주년, 통합과 화합의 시대, 문화에서 길을 찾다’라는 제하의 이 심포지엄에서 그는 ‘독일 통일 이후의 문화정책과 박물관의 발전’을 주제로 발표했다.

서울 용산구 박물관 접견실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힌즈 전 회장은 “고려는 북한과 남한을 아우르는 한반도의 첫 통일국가라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럼에도 조선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면서 “이번 전시를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고려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고려를 주제로 열리는 전시 중 역대 최대 규모인 대고려전에선 역사 속 남북 간 사제의 만남 여부가 화제였다. 고려 태조 왕건과 스승인 희랑대사를 말하는 것인데, 남한 유물인 희랑대사 목조좌상과 북한 유물인 왕건 동상을 나란히 전시하고자 했지만, 현재는 왕건상 없이 빈 좌대로 전시 중이다. 올 들어 화해 분위기로 치닫던 남북 관계가 불투명해지면서 박물관 측이 북한에 대여를 요청한 고려 유물이 한 점도 넘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힌즈 전 회장은 “왕건상과 희랑대사상은 남북한이 공유하는 ‘공통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국민들에게 ‘같은 민족(one people)’ 의식과 남북한 간의 유대감을 심어줄 수 있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남북의 문화교류 및 협력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독일 통일 사례에 비춰 유의해야 할 점을 물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은 갑자기 무너졌다. 동서독은 경제 격차 못지않게 문화 격차와 가치관의 격차가 컸다”며 “분단 전부터 동독 박물관은 역사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을 일방적으로 제시했고, 서독은 나치 독재를 겪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논쟁을 벌이기보다 통독 후 첫 전시에서 동서독의 서로 다른 일상과 정치, 사회, 문화를 어떠한 가치 판단 없이 그대로 보여줬다. 판단은 관람객에게 맡겼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교류가 남북 정치의 ‘아이스브레이커’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동서독 양측이 이해의 폭을 넓힌 사례로 1987년 베를린 탄생 750주년 기념 전시를 들었다. 당시 동서독의 미술관들은 경쟁적으로 전시를 개최했고, 그 과정에서 양측의 장관과 관장 등 미술계 인사들이 서로 오가며 축사했다. 미술뿐 아니라 클래식, 대중음악, 스포츠 등 문화 전반에서 인적 교류가 일어났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힌즈 전 회장은 박물관계의 최대 행사인 ICOM 정기총회가 내년 9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다며, 이때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