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서울 지하철 청량리역 인근 무료급식시설 ‘밥퍼’에서 밥을 푼다. 오후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 기관사로 운전대를 잡는다. 하루 수만명을 실어 나르는 1호선 기관사로서 올해 9월엔 60만㎞ 무사고 기록을 달성했다. 전동열차 운전대를 잡은 지 23년 만이다. 근무가 아닐 때는 밥퍼로 달려가 자원봉사를 한다. 밥퍼 명예주방장으로 불린 지도 벌써 10년째다. 지하철 배회 독거노인들을 밥으로 섬겨온 지하철 기관사 김동열(56) 명성교회 안수집사의 이야기다.
지난 19일 서울 성동구 서울교통공사 군자차량사업소에서 전동열차를 끌고 나오는 김 집사를 만났다. 이날 김 집사는 야간 근무조였다. 오후 출근에 앞서 그는 새벽 6시부터 오전까지 밥퍼에서 독거노인과 노숙인 700여명의 식사를 준비하고 배식 봉사를 한 뒤 일터에 나왔다. 근무 시스템은 주말 공휴일 구분 없이 ‘새벽 근무-오후 근무-야간 근무-비번-휴일’ 등 닷새 간격으로 돌아간다. 이들 사이 빈 시간을 이용해 달마다 20일 가량을 밥퍼에서 주황색 앞치마를 입고 봉사한다. ‘메트로 김 집사’로 불리는 그는 산타 할아버지 연배의 노인들에게 매일 식사를 대접하는 주황색 산타다.
“1호선 기관사여서 경기도 양주와 서동탄, 인천역에서 열차 선회를 위해 맨 앞의 저와 맨 뒤의 차장이 자리를 바꿔요. 이때 걸어가다 보면 밥퍼에 오시는 할아버지들이 보여요. 어르신들은 공짜고 따뜻하니까 지하철에 계세요. 양주나 충남 온양에서 일부러 청량리까지 밥을 드시러 오기도 하고요. 하루 한 끼만 드시는 거예요. 안타까운 건 주일이에요. 밥퍼가 쉬거든요. 그럴 땐 빵이라도 쥐어 드려야 맘이 편해요.”
지난 12일 방문한 밥퍼엔 새벽부터 식당에 들어선 노인들로 터질 듯 했다. 오전 11시 배식이 시작되는데 이 한 끼를 먹기 위해 오전 6시부터 식당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TV를 본다. 밥퍼 나눔운동본부 김미경 실장은 “혼자 사는 어르신이 80%이고 노숙인이 20%”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그동안 밥을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울먹이곤 한다”고 전했다.
김 집사는 신답승무사업소 동료들을 한 달에 두 번 밥퍼 봉사현장으로 이끈다. 서울교통공사 연합선교회에서도 1년에 두 차례 참여한다. 김 집사는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 이런데도 있구나, 이렇게 작은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나는구나 느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오전에 ‘밥퍼’봉사 오후엔 ‘운전대’… 60만㎞ 무사고 기관사, 섬김의 이중생활
입력 2018-12-2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