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 레프트가 사는 법… 수비도 리베로처럼

입력 2018-12-23 21:24

“레프트는 리시브와 수비, 스파이크, 서브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배구에서 팀 내 살림꾼 역할을 맡는 레프트는 어느 하나만 잘해서는 안 된다. 수비 전문인 리베로만큼 안정적으로 서브 리시브를 하면서도 공격을 전담하는 라이트처럼 날카로운 스파이크를 때릴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상대의 강한 스파이크 서브를 받아 내야 하는 남자배구에서는 공수 모두 뛰어난 ‘만능 레프트’가 대세다.

올 시즌 V리그 남자배구에서 공격수인 레프트들이 리베로를 제치고 수비 부문 2-4위에 올라있다. 수비 순위를 결정하는 세트당 수비 평균은 서브 리시브가 정확할수록, 디그(스파이크 등 상대 공격을 받아내는 것) 숫자가 많을수록 높아진다. 23일 기준으로 수비 1위는 삼성화재의 리베로 김강녕(5.81개)이다. 대한항공의 레프트 정지석(5.16개)과 곽승석(5.09개), 현대캐피탈의 레프트 전광인(5.04개)이 나란히 그 뒤를 잇고 있다.

정지석은 공수 모두에 빼어난 ‘괴물 레프트’다. 이번 시즌 V리그 남자부 전체 공격 성공률(58.77%) 1위, 리시브 효율(53.95%)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선수 가운데 득점 2위(306점)로 주포 역할도 맡는다. 말 그대로 만능 플레이어로 활약하다 보니 그가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팀 전체가 휘청거린다. 정지석은 지난 9일 “경기에서 지고 나면 분해서 잠도 안 온다. 왜 이렇게 플레이했나 자책할 때도 있다”라고 에이스로서 느끼는 부담감을 토로했다.

베테랑 곽승석은 수비 잘하는 레프트 중에서도 독보적인 선수다. 지난 시즌 레프트로는 처음으로 ‘수비 5000개(리시브+디그) 기록상’을 받을 정도로 수비 실력이 빼어나다. 그보다 앞서 수비 5000개를 기록한 5명의 선수는 전부 리베로다. 리시브와 디그 등에 능하지만 수비에만 치중하지도 않는다. 지난달 25일 곽승석은 삼성화재를 상대로 트리플크라운(서브·블로킹·후위 공격 각 3개 이상)을 터뜨리며 팀의 3대 0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현대캐피탈로 이적한 전광인도 팀에 점차 적응하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공격 성공률에서는 국내 선수들 가운데 2위(53.47%)이며, 리시브 효율은 전체 4위(50.32%)다. 전광인은 지난 4일 OK저축은행과의 경기 후 “지난해보다 서브 받는 횟수가 많아지며 리시브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면서도 “리시브를 하면서 공격을 하는 것이 버거운 것 같다”라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전광인의 고백처럼 공수 모두에서 제 몫을 해야 하는 레프트는 결코 쉬운 포지션이 아니다. 특히 자세를 크게 낮추고 많이 움직여야 하는 수비는 훈련하기도 까다롭다. 지난 10월 곽승석 다음으로 수비 5000개를 달성한 한국전력의 주 공격수 서재덕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배구 선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수비다. 제대로 익힐수록 팀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많이 연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여자배구에서는 황민경(현대건설)과 이재영(흥국생명) 등이 레프트에서 수비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라이트인 문정원(한국도로공사)은 세트당 수비 평균 9.90개(2위)로 리베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수비 부문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