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빅픽처’, 기독교 확산 위해 ‘태양절’을 ‘예수 탄생일’로

입력 2018-12-22 04:00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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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전 세계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돌입한다. 미국과 유럽권에선 12월 마지막 주가 통째로 휴일이 된 게 오래전이다. 기독교도가 많지 않은 국가에서도 크리스마스는 휴일인 곳이 많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로 여겨진다.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거듭나게 된 이후 이는 당연한 사실로 세계인들에게 받아들여져 왔다. 모든 교회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 예배를 드리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한다. 길거리에는 각종 이벤트가 벌어지고 백화점과 쇼핑몰, 대형마트는 시즌 세일에 돌입한다. 가게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불빛, 장식들이 가득해진다. 이처럼 크리스마스는 세계인의 축제인 셈이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를 뜻하는 라틴어 ‘Christus’와 ‘Maese’가 합쳐진 말이다. Maese는 로마가톨릭의 미사를 뜻하고, 이는 기독교의 예배를 의미한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념해 예배를 드리고 서로 축복한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X-mas’라고 쓰는 건 그리스어의 영향이다. X는 그리스어의 그리스도(크리스토스) ‘XPIΣTOΣ’의 첫 글자다.

그러나 이 크리스마스는 ‘진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이 아니다. 어떻게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로 지정돼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됐을까.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도약한 로마시대의 이교적 풍습이 크리스천 신앙과 교묘하게 결합돼 세계인의 축제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로마시대 태양신 축제 풍습, 크리스마스로!

고대 로마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지중해 인근 지역을 평정하고 인도까지 세력을 확장했던 정벌국가였다. 로마인들은 고대 대부분의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다신(多神)을 섬기는 원시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유대지역도 로마에 복속된 땅이었다. 로마는 유대인의 유일신 신앙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이후 기독교에 대해서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댔다. 크리스천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는 일은 당시엔 일상사였다.

철저하게 유일신 신앙을 억누르던 로마는 더 이상 급증하는 크리스천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기독교 국가로 변모했다. 로마 황제가 스스로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 기독교가 일반화됐지만 로마인들의 재래신앙과 미신,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여전히 기독교인들을 비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4세기쯤 동·서로마를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공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선언했다. 누구나 로마시민이면 신앙의 자유를 누린다는 뜻이지만 속내는 기독교와 기독교도들에게 더 많은 특혜를 주는 내용이었다. 또 하나, 콘스탄티누스는 성경에 언급된 여러 기념일을 로마 토속 풍습과 합쳐 새로운 기념일을 만드는 데도 주력했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로 정해진 것도 AD 366년 이 로마 황제에 의해서였다. 사시사철 쾌청한 날씨를 가진 지중해 연안의 로마에서 12월은 가장 나쁜 절기이자 가장 좋은 절기였다. 해가 짧아져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시기였고, 당연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시기이기도 했다. 태양의 신 미트라가 동지까지 자신의 모습(태양)을 조금씩 숨기다가 그 다음날부터 다시 더 드러내는 날을 태양절로 정해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수백년을 이어온 로마인의 이교적 풍습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크리스천이기 이전에 광활한 로마를 통치하는 황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양절을 예수 탄생일로 바꿨고, 당시의 로마가톨릭 전통에 따라 수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미사를 드렸다. 1년 중 가장 큰 축제였던 태양절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날로 정하면 로마제국에 더 많은 기독교적 정서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후 로마가 게르만족을 정벌해 서유럽에 진출하면서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로 고착됐다. 가톨릭은 어려운 라틴어 성경을 게르만족 이교도에게 펼쳐 보이는 대신 크리스마스 축제를 통해 전도에 나선 셈이다. 1년 중 가장 한가한 때 새해를 준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기하는 전통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계기였다.

날짜가 기록되지 않은 예수 탄생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 태어났는지 정확한 날짜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 예수 탄생의 의미와 하나님의 축복, 이후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인지를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누가복음 2장 7~8절)

이를 통해 유추해보면 예수가 태어난 때는 양치기가 양떼에게 풀을 먹일 수 있던 시기 가운데 어느 날로 여겨진다. 성경학자들마다 다르지만 9~10월 사이였다는 게 정설이다. 강수량이 많지 않은 유대지역은 10월 이후 기온이 떨어지면 수풀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이 구체적인 날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예수 탄생일이 그 자체로 ‘우상(偶像)’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초기교회 크리스천들은 로마가톨릭이 정한 크리스마스 축제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름만 바뀐 이교도의 태양신 숭배에 다름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크리스천들도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고 이날을 기념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이웃, 친지와 나누는 작은 선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되새기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을 위해 자신 전체를 희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교적 요소가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크리스천들도 함께 축하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기독교 신앙의 진정성을 갖출 때 가능한 일이다.

산타클로스·크리스마스트리 신화

산타클로스는 고향인 북극에서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빨간 옷을 입은 뚱뚱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선물과 너그러움, 그리고 넉넉함의 상징이자 신화다.

이 신화는 3세기 실존했던 터키의 수도사 성 니콜라스에서 기원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상속받은 재산을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빈곤한 자들을 돕는 데 일생을 보냈다. 성 니콜라스를 기념하는 전통은 유럽 전체로 퍼졌다가 지금은 네덜란드에 여전히 남아 있다. 쿠키와 사탕을 받기 위해 신발을 깔아놓는 풍습이 바로 네덜란드의 성 니콜라스의 날(12월 6일) 풍속에서 시작됐다. 성 니콜라스의 네덜란드어 ‘신터 클라스(Sinter Klaas)’가 18세기 이후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해온 네덜란드 사람들을 통해 미국에 퍼지면서 산타클로스가 된 것이다. 산타클로스는 20세기 대량소비·대량생산 자본주의 사회로 탈바꿈한 미국의 크리스마스 풍습과 결합되며 전 세계로 확산됐다.

크리스마스트리 역시 크리스천 신앙과는 관계없는 풍습이다. 중세시대 게르만족은 동지나 신년에 생명력의 상징인 나뭇가지를 창이나 천장에 장식하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또 집 밖 상록수 가지에 음식물을 걸어놓으면 풍요로워지며 악마를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풍습이 독일을 거쳐 게르만족의 남하 경로인 서유럽 일대에 퍼졌고, 16세기 기독교와 결합돼 크리스마스 기념 장식으로 고착화됐다. 동지 이후 거행되는 태양신 축제에서 탄생한 크리스마스와 게르만족의 토속적인 풍습이 합쳐진 셈이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소나무, 전나무로 사용하는 것 역시 게르만족의 이 풍습에서 기원한다. 서유럽 일대에서 가장 흔한 나무가 바로 이들 침엽수였기 때문이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