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선물] 희망이라는 선물, 우리가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입력 2018-12-21 17:30
사진=Unslash
김이기 목사(왼쪽)와 고철호 장로가 지난 15일 전북 전주 왕의지밀 훈민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콩팥선교단 단장 김옥남 목사(오른쪽)가 지난 15일 ‘제1회 생존 시 신장기증인 및 이식인과의 만남’에서 발표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의 옷을 입고 오셔서 우리에게 아무런 값없이 ‘구원’이란 ‘선물’을 주셨다. 사도 바울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온 ‘은혜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또 예수님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10)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선물로 보내주셨다.

이 ‘선물’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반응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실천’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무엇일까. 생명이 생명을 잇는 숭고한 나눔이 아닐까. 사랑은 사랑을 낳고, 생명은 생명을 이어준다.

생명을 잇는 나눔

신장 기증자 김이기(64) 목사와 그의 신장을 이식받은 고철호(61) 장로는 전주 옥산교회 담임목사와 성도 사이였다.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하던 고 장로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던 김 목사는 2009년 신장 기증을 결심했다. ‘거룩한 찔림’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병중에도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고 장로의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어요. 숨이 차서 잘 걷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내 양이 아프다는데 누구라도 그랬을(기증 결심) 거예요”라고 말했다. 당시 11년간 복막투석을 해왔던 고 장로는 삶을 포기하고 영정사진까지 찍어 놓은 상태였다.

김 목사는 신장이식수술을 받기까지 예기치 못한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두 사람의 조직검사 결과가 일치해 신장기증이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김 목사의 고혈압,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다시 기증 불가판정을 받았다. 김 목사는 병세가 깊어지는 성도를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다. 건강한 몸 만들기에 돌입했다. 3개월 동안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몸무게를 14㎏ 감량했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애끓는 마음으로 하니 평소 못했던 체중감량이 가능했다. 병원에서 다시 합격판정을 받았다.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국립의료원은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매매가 의심된다며 장기기증 승인을 하지 않았다. 김 목사는 담당자를 찾아가 장기매매가 아니란 사실을 이해시켜야 했다. 고 장로가 자신의 교회 성도란 것을 증명하는 수십 페이지의 서류를 제출했다. 성도를 살리려는 목회자의 진심이 통했는지 결국 국립의료원의 승인을 받았다. 2010년 1월 28일 전북대학병원에서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김 목사는 고 장로에게 마음의 부담을 줄까봐 2011년, 10년간 목회하며 성장시킨 옥산교회를 사임하고 더 작은 교회인 신광교회로 임지를 옮겼다.

고 장로는 “목사님의 사랑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선물로 받았어요. 저를 살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요. 당시 찍었던 영정사진을 보면 죽음이 드리워진 슬픈 얼굴인데 지금 이렇게 제 얼굴이 활짝 피었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고 장로는 중단했던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누군가의 생명 나눔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생존 시 신장기증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신장 하나를 나누는 순수한 사랑의 실천이다. 만성신부전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선물한다. 또 타인을 위해 신장을 기꺼이 내어준 기증자는 한 생명을 살렸다는 자긍심과 기쁨을 선물로 받는다.

생면부지의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한 목회자들의 모임이 있다. 2008년 9월 9일 신장을 기증한 99명의 목사를 중심으로 창립된 콩팥선교단이다. 이들이 9월 9일을 창단일로 정한 것은 장기기증으로 생명을 구하고 영혼을 구하자는 의미다. 이들은 출범 당시 “하나님께서 주신 두 개의 신장 중 한 개를 이미 기증함으로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를 드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때 남은 신장 한 개마저도 고통 받는 환우에게 기증하기로 서약한다”고 선언해 사회적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성탄절을 앞둔 지난 15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전북 전주시 왕의지밀 훈민관에서 개최한 ‘제1회 생존 시 신장기증인 및 이식인과의 만남’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콩팥선교단원들은 신장이 하나란 것을 예수님의 못 자국처럼 이웃사랑의 증거로 여긴다고 말한다. 콩팥선교단 단장 김옥남(80) 목사의 경우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하는 성도를 보고 교환기증(혈연 또는 지연 간인 환자가 이식받는 것을 조건으로 기증하는 것)을 했다. 그는 “목회자가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면 어떻게 수많은 성도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며 “신장 기증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인간이 생명을 나눌 수 있도록 창조하셨어요. 신장은 두개, 간은 절제해도 다시 자랍니다. 20년 전에 신장을 기증했는데 지금 전 아주 건강해요. 운동과 색소폰 연주를 즐길 정도입니다. 전 기쁨과 건강을 선물로 받았어요.” 그는 전주중앙교회 원로목사이며 한국기독교장로회 전 총회장이다.

장기기증은 생명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1999년 신장을 순수기증(기증인이 생명을 나누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환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기증하는 것)한 대전 참빛교회 조용문(48) 목사는 지난 10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생체 간이식으로 생후 10개월 된 아기의 생명을 살렸다. 그는 아이처럼 맑은 눈빛으로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의 것을 나눠줄 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기는 수술 후 건강이 잘 회복돼 퇴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기와 가족이 이번 성탄절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돼 감사해요.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고 십자가의 사랑을 함께 나누려고 한 일이예요. 건강하니까 나눌 수 있지요.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현재 100여명으로 구성된 콩팥선교단은 정기모임과 선교활동을 통해 생명나눔운동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손과 발

미국의 작가이자 목사인 프레드릭 비크너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몸이다. 그분이 사람들에게 내밀 손은 우리 손밖에 없고, 사람들에게 찾아갈 발은 우리 발밖에 없으며, 그들을 바라볼 눈은 우리 눈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서 ‘어둠 속의 비밀’에서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가 되어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가 되고, 우리가 가진 그리스도의 치유와 소망의 최대치를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코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구원의 선물뿐만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많은 선물을 심어놓으셨다.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 3:13) 오늘 하루가 선물이다. 하나님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선물을 가지고 이 세상의 고통과 눈물 속으로 오라고 부르신다. 한국교회는 지금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다.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사랑의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전주=글·사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