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 이틀째인 2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전격 방문했다. 비핵화 실무협상을 전담하는 비건 대표의 판문점행은 북한과의 접촉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방한 첫 메시지로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 가능성을 언급하고, 남북 합의 이행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대화 재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비건 대표는 남북 9·19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JSA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당국이 직접 마련한 일정으로 한국 정부 당국자는 동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한 미 대사관은 “비건 대표가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다”고만 밝혔다.
비건 대표의 행보는 북한을 겨냥한 양면전으로 보인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 정부의 대화 의지를 피력하는 동시에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향후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미 정부의 유화 제스처에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이 조선반도 비핵화의 정의를 ‘북한 비핵화’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그릇된 인식”이라며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의”라고 주장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완전한 비핵화’ 개념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북한이 다시 미국의 핵 위협을 거론하며 북·미 양측의 노력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비핵화 상응조치를 관철하기 위한 압박으로 보인다. 통신은 “미국의 핵 선제타격 대상의 첫 번째인 우리가 안전담보 없이 핵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비핵화가 아니라 무방비 상태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건 대표는 이날 저녁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만찬을 함께했다. 둘은 북·미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방안들을 폭넓게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21일엔 한·미 워킹그룹 2차 회의를 열어 비핵화와 대북 제재 문제를 협의한다. 양측은 오는 26일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에 필요한 제재 면제 사안을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리 정부의 대북 800만 달러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비건 대표는 전날 인천공항에 입국하면서 “회의 종료 후 언론에 할 말이 더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다시 움직이는 美… 北에 대화 손짓
입력 2018-12-21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