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은퇴를 선언한 폴 라이언(48·사진) 미국 하원의장이 19일(현지시간) 고별연설에서 “미국 정치가 무례와 냉소에 휘말려 망가졌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라이언 의장은 워싱턴 의회도서관에 모인 200여명의 의원과 보좌관, 가족 앞에서 30분간 고별연설을 했다. 그는 “오늘날 불화는 곧 불신으로 치닫는다. 자신의 신념을 발전시키는 일보다 남의 죄를 밝혀내는 것에 더 애를 쓴다”면서 “분노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분노는 감정적 고통일 뿐이다. 정치에서 의미를 빼앗고 선한 사람들이 공공서비스를 추구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라이언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분노와 분열로 상징되는 ‘트럼프식 정치’를 비판한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했다. 라이언 의장은 최근의 정치 풍토를 ‘망가진 정치(broken politics)’라고 표현했다.
라이언 의장은 자신의 개인 역량만으로 정치계의 분열과 분노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 의회에 대한 신뢰는 버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회)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 주류를 대표해온 그가 미국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으로서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트럼프 시대의 훼손된 정치를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라이언 의장은 2015년 45세로 미 역사상 최연소 하원의장에 선출됐다. 전임자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강경파와의 갈등으로 정계를 은퇴한 후 떼밀리듯 의장 자리에 오른 것이지만 곧 공화당의 ‘40대 기수’이자 차세대 리더, 당의 미래로 떠올랐다.
라이언 의장은 임기 내내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2016년 대선 때는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트럼프 지지를 유보했다. 이후에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반이민·외교 정책에 반대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거리를 둬왔다.
하지만 라이언 의장의 이런 행보는 존재감 실종으로 이어졌고, 그는 지난 4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며 중간선거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라이언 의장은 “임기를 한번 더 하면 가족은 나를 ‘주말 아빠(weekend daddy)’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16살 때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잃었던 그는 앞으로는 세 명의 10대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하원의장 자리는 새 회기에 다수당이 된 민주당 인사가 넘겨받는다. 현재로선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폴 라이언 “美 정치, 무례·냉소에 망가져”
입력 2018-12-20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