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영혼들아 사고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렴

입력 2018-12-20 19:20 수정 2018-12-20 21:49
강릉 펜션 가스중독 사고로 부상을 입은 서울 대성고 3학년 학생들이 강릉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가운데 20일 강원 강릉아산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

20일 서울 은평구 대성고 정문 앞 오르막길에는 아침부터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들어가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던 한 학생은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곳곳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일찍 조문을 마친 학생들은 교복 가슴팍에 검은색 근조 리본을 달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리막길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강릉 펜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대성고 3학년 학생 3명의 합동분향소가 이날 대성고 옆 대성중 실내체육관에 마련됐다. 대성중은 대성고와 체육관을 함께 쓴다. 유족들은 장례식을 조용히 치르는 대신 학교 친구들이 애도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자고 했다고 한다. 재학생과 다른 학부모의 요청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학생들은 분향소 설치가 마무리되기 전인 오전부터 이곳을 찾았다. 전날 빈소에 들른 뒤 분향소를 찾았다는 한 학생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분향소에는 유족의 뜻에 따라 영정을 두지 않고 고인의 이름도 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체육관 단상에 설치된 4단 국화 위에 ‘신위(神位)’라고 적힌 문패만 걸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인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도 내부 전광판에 사망 학생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학교 정문과 그 앞 골목에는 ‘분향소 출입은 대성고 학부모 학생만 가능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었다. 대성고 교직원들은 정문에서 신원을 확인했다. 분향소 설치를 담당한 한 관계자는 “(유족은) 분향소에도 아이들 신원이 노출될 수 있는 사진이나 이름은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하셨다”며 “최대한 관심 받지 않고 마무리하길 원하셨다”고 말했다.

분향소를 찾는 발길은 저녁 늦게까지 끊이지 않았다. 3학년뿐만 아니라 1, 2학년 학생도 조문에 동참했다. 대성고는 이틀째 임시휴업 중이지만 이날도 학교 앞을 지나는 버스는 대성고 교복 차림의 학생들로 가득 찼다. 지나가던 주민들도 교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먼발치서 학생들을 바라보던 주민 오모(56)씨는 “부모 마음은 어떻겠느냐”며 “언젠가 동네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그렇게 됐다고 하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빈소에는 이틀째 조문이 이어졌다. 앳된 얼굴의 조문객이 유난히 많았다. 이들은 장례식장이 익숙지 않은 듯 빈소 앞에서 머뭇거리다 들어갔다.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고 온 학생들도 있었다. 이따금씩 빈소 밖으로 흐느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병원 관계자는 “다들 조용히 있다가 갔다”고 말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도 빈소를 방문했다. 유 장관은 유족과 이야기를 나눈 뒤 취재진과 만나 “한 어머니는 선생님들의 잘못인 것처럼 책임을 묻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 따르던 좋은 분들인데 선생님이 상처받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빈소를 방문한 뒤 “한 아버님이 이런 일이 없도록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세 학생의 시신은 21일 발인을 마친 뒤 운구차를 타고 합동분향소에 머물 예정이다. 전날 이들을 안치실에 옮긴 한 관계자는 “부디 착한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기를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