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성에 설치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23일로 개소한 지 100일이 된다. 지난 3개월간 대한민국 공무원·민간인 60여명이 상주하면서 관찰한 개성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지난 9월 14일부터 매주 월~금요일 개성에서 지내는 김창수 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이 20일 기자들과 만나 개성에서 직접 체험한 변화상을 소개했다.
공동연락사무소 직원들은 아침마다 종종 창문 넘어 영어로 방송이 나오는 걸 듣는다. 김 사무처장은 남측 사무소 직원이 영어공부를 하는 줄 알았는데, 아침 산책길에 들어보니 방송은 사무소 경계 밖에서 나오고 있었다. 김 사무처장과 만난 북한 주민은 “개성공업지구 밖에 있는 판문점리와 평화리 주민이 (주민 방송으로) 영어 학습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주민들 중에는 영어를 섞어 대화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고 한다. 김 사무처장이 건넨 얘기에 “에이, 그건 오버(over)하시는 겁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 주 성탄절 때는 공동연락사무소 내에 트리와 실내조명을 설치하기로 했다. 북한에서는 트리를 ‘올카’라고 부르고, 연말 실내에 설치하는 조명은 ‘불장식’이라고 한다. 남측 인원이 사용하는 사무공간에는 ‘올카’를, 연락사무소 1층 로비에는 ‘불장식’을 한 달 정도 설치해 남북 직원이 함께 연말연시 분위기를 즐길 계획이다.
미국에 대한 북측 직원들의 태도도 상당히 유연해졌다고 한다. 김 사무처장은 최근 대미(對美)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북측 직원들에게 “공공외교 차원에서 미국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당국 차원의 정식 제안은 아니었지만, 예상외로 “같이 가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머지않아 유일한 분단국가에 설치된 공동연락사무소의 남북 직원이 함께 방미해 남북 관계 변화상을 증명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을 전망이다.
북한 주민들도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 김 사무처장이 만난 개성 주민들은 미세먼지 문제에 관심을 표하며 “아무래도 건강에 좋지 않으니 미세먼지가 많은 것보단 차라리 추운 게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 개성 주민들은 남측이 운영하는 정·배수장을 거쳐 제공되는 수돗물에도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일부 주민은 불소 처리로 인해 화학약품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수돗물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검역에 매우 철저한데, 최근 중국에서 돼지 열병과 일본·한국에서 각각 콜레라와 조류독감이 발생하자 지난달 남측에서 생산된 돼지고기의 반입을 막았다. 덕분에 직원들은 한 달 가까이 채식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사용 의혹에 대해 김 사무처장은 “공단이 가동된 흔적은 없다”고 했다. 공장이 돌아가려면 발전시설 등 기반시설이 가동돼야 하는데, 상당수가 장기간 사용하지 않아 불능화된 상태라는 설명이다. 김 사무처장에 따르면 북한은 개성공단 내 100개의 관리구역을 지정해 놓고, 2인 1조로 각 구역을 관리해온 것으로 보인다.
공동연락사무소에서는 19일까지 남북 간 285차례 회담과 협의가 진행됐다. 하루 평균 2.9차례 대면접촉을 한 셈이다. 통지문도 173건이 교환됐다.
한편 남북은 21일부터 사흘간 개성~원산 간 동해선 도로 100㎞ 구간에 대한 현지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24일엔 개성 지역의 경의선 도로도 살펴본다. 통일부는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도록 미국 및 유엔 측과 긴밀히 협의했다”고 강조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북 개성 주민들 마을 방송으로 영어공부, 성탄트리도 반짝반짝
입력 2018-12-21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