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달궈진 빵틀에 반죽을 앞뒤로 붓고 앙금 한 주걱을 올린다. 다시 반죽을 끼얹어 무쇠 뚜껑을 닫는다. 8개의 붕어모양 틀에 반죽과 앙금이 가득 채워지면 노릇한 냄새가 날 때까지 기다린다. 빵틀을 앞뒤로 두 번 뒤집은 뒤 뚜껑을 열자 싱긋 웃음 짓는 붕어빵이 모습을 드러낸다. 20분 정도 지나자 바람막이(붕어빵 진열대)가 붕어빵으로 가득 찬다. 고소한 냄새가 퍼지자 사람들은 붕어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김치학(55) 포항 푸른초장교회 목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성도들과 함께 흰색 0.5t 트럭에 올라타 붕어빵을 굽는다. 하루 500여개다. 팔기 위한 것이 아니다. 주기 위해서다. 20여명의 성도가 주일예배를 드리는 푸른초장교회는 지난해 11월 포항 일대에 규모 4.6의 지진이 발생한 뒤부터 1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지진 이재민들을 붕어빵으로 위로하고 있다. 성도들과 함께 고통 받는 이웃을 위로하다보니 숨은 재능도 발견했다. 저소득층 성도들은 봉사를 하면서 익힌 붕어빵 기술로 직접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지난 17일 김 목사와 성도들을 만났다.
“왔능교? 추운데.” “추워도 저희가 안 오는 것 봤능교.”
트럭이 흥해체육관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이재민들이 문을 열고 나왔다. 김 목사는 ‘붕어빵은 사랑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트럭 짐칸의 한 쪽 문을 열며 이재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여전히 흥해체육관에는 정부 등과 이주 협의를 끝내지 못한 이재민 90여 가구가 살고 있다. 한 이재민은 주차장을 바라보며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이곳에 세탁차 급식차들이 가득 찼었다”며 “지금은 체육관 내 샤워실도 고장이 난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목사와 성도들은 트럭 짐칸의 반대쪽 문을 열고 붕어빵을 굽기 시작했다. 김 목사는 이재민들에게 “붕어빵은 사랑입니다” 하면서 빵을 건넸다. 밤에는 체육관에서, 낮에는 근처 경로당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이재민 이모(74·여)씨는 “지진이 났을 때 목사님이 먼저 다가와 빵을 건네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면서 “모두가 떠난 봄, 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붕어빵을 건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웃었다. 포항 지역 교회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김 목사와 성도들에게 지금의 0.5t 경차 트럭을 선물했다.
성도들은 봉사를 하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찾게 됐다고 했다. 함께 봉사에 나섰던 성도들 중에는 붕어빵 장사를 다시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트럭 위에 올라타 붕어빵을 굽던 서동균(62)씨는 포항에서 유명한 조직폭력배 출신이다. 그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나를 끝까지 믿어준 형마저 공사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이후부터”라고 말했다. 서씨는 “나는 잘못된 삶을 살았지만 형만은 꼭 천국에 보내달라는 기도를 하고 싶어 교회를 찾았다”면서 “이후 포항 지진이 났을 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목사의 제안에 바로 하겠다고 자원했다”고 기억했다. “붕어빵을 굽고 있는 지금 적은 돈이지만 착실하게 살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옆에서 김 목사와 함께 붕어빵을 나눠주고 있는 조경태(65)씨는 술이 없으면 하루를 온전히 보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조씨는 “붕어빵을 만들면서 더 맛있는 방법을 생각하느라 술 생각을 잊어버렸다”면서 “오늘도 아침에 서씨와 함께 시장에 나가 앙금에 섞을 땅콩 호두 아몬드를 고르고 왔다”며 웃었다. 이들은 주일과 봉사하는 날 외에는 파란색 봉고차를 타고 포항을 누비며 붕어빵을 판다. 서씨는 “붕어빵은 살짝 식어야 가장 맛있다는 것도 발견했다”며 봉투 왼쪽 끝을 가위로 잘라냈다.
김 목사는 붕어빵 봉사를 하며 오히려 교회가 풍성해졌다고 믿는다. 그는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는 ‘20명 다니는 교회가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들었다”면서 “이제는 적십자사 같은 곳에서 먼저 함께 봉사하자며 연락이 온다. 각종 중독과 빈곤으로 헤매던 성도들이 봉사를 넘어 자활을 생각하는 것도 기적”이라며 트럭을 빤히 바라봤다. 최근 그는 청년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청년들과 함께 마카롱을 구워보고 싶어요. 지역사회를 사랑으로 섬기고 청년들에게도 자립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거예요. 포항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베이커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포항=글·사진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현장] 지진 이재민엔 맛있는 위로, 성도에겐 자활의 기술로…‘일빵이조’ 사랑의 붕어빵
입력 2018-12-21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