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모비스 가드 박경상(28)이 ‘주전급 식스맨’으로 코트를 누비며 팀 연승을 이끌고 있다. 주축 가드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생긴 공백에도 현대모비스가 파죽의 13연승을 달리며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숨은 활약이 큰 뒷받침이 됐다.
박경상은 19일 국민일보와의 전화에서 “프로 데뷔 후 이렇게 팀 성적이 좋은 게 처음이라 실감이 나지 않지만 기분이 좋다”며 “조금씩 열심히 나아갈 테니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우승을 한 뒤 팬들께 당당히 서서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전날 서울 SK를 88대 69로 꺾고 13연승에 성공했다. 발목 부상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던 양동근이 복귀했지만 박경상의 활약은 계속 됐다. 3점슛 5개를 포함해 17점 2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완승을 거들었다.
박경상은 “부상 선수들이 생겨 뛸 기회가 많아졌고, 주어진 역할에 맞춰 뛰다 보니 좋게들 봐주시는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주전급 식스맨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제가 솔직히 그 정도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팀에 보탬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답했다.
식스맨으로 뛰고 있지만 박경상은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마산고 시절 기본 30득점은 거뜬했고, 50득점 이상도 세 차례나 기록해 기대를 모았다. 키는 178㎝로 작지만 저돌적인 돌파와 정교한 슈팅이 돋보였다. 농구팬들은 그를 ‘득점기계’라 불렀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안드레 이궈달라(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2007년 국내에서 열린 유망주 농구캠프에서 박경상을 본 뒤 “한국의 앨런 아이버슨(은퇴)”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연세대를 거쳐 2012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전주 KCC 유니폼을 입었지만 기대와 달리 프로에선 빛을 보지 못했다.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잠재력을 발산할 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모비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적생’ 타이틀을 달다 보니 이를 더욱 악물게 됐다.
박경상은 “비시즌 운동량을 평소의 2~3배 정도로 늘렸다. 자율운동 때 드리블과 슈팅을 꾸준히 연습했다”며 “시즌 초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속상했는데, 경기를 거듭할수록 보상받는다는 기분이 든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전력이 탄탄한 현대모비스에서 여전히 식스맨으로 뛰고 있지만 존재감은 오히려 커졌다. 올 시즌 전 경기에 나와 평균 16분49초를 뛰면서 주전·비주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대성과 양동근이 모두 결장한 지난 15~16일 서울 삼성, 원주 DB전에서는 30분 이상씩 뛰며 주전 가드 임무를 완수했다.
그는 “유재학 감독님이 꾸준히 출전 기회를 주시니 실력이 쌓이는 것 같다. 믿음에 보답하려고 더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것이 많다. 예전에 비해 뒤처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박경상의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에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면 반드시 자기순서는 온다”고 적혀 있다. 식스맨으로 뛰면서 올 시즌 꾸준한 활약을 보이는 그다운 문구다. 그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해 놓은 지 1년도 넘었는데, 힘들 때마다 읽고 힘을 낸다”며 웃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명함만 ‘식스맨’… 주전 뺨치는 ‘믿을맨’ 박경상
입력 2018-12-19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