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는 그 책이 정수리를 내려치는 충격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그 책을 읽어야 하겠어?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어 부수는 도끼 같은 책. 이것이 나의 믿음이야.” 프란츠 카프카가 1904년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쓴 편지에서 한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길고 아픈 밤’은 병(病)에 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관념을 도끼로 깨어 부순다. 산산이.
저자 뤼방 오지앙은 이런 책을 쓰는 데 맞춤한 이력을 갖고 있다. 프랑스 현대 철학자인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등에서 공부했고 철학과 사회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국장을 역임한 오지앙은 분석철학과 도덕철학을 연구했다. 이 책은 철학으로 무장한 그가 췌장암을 앓으면서 쓴 마지막 에세이다. 병에 대한 인문학적 통념에 대항한다.
책은 크게 질병에 대한 철학적 고찰, 환자로서 가진 개인적 단상, 3년간 쓴 투병 일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고통을 모르는 자의 내면에는 심오함이 없다.’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 오지앙은 먼저 고통이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는 이런 ‘고통효용론’을 비판한다. 고통효용론은 악을 정당화할 수 있고, 고통의 미덕을 강조하면 사회적 가혹행위에 무감각해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긍정심리학의 개념 중 하나인 ‘회복탄력성’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긍정심리학은 긍정 심리에 초점을 둔 심리학 분야다. 회복탄력성은 시련을 발판 삼아 도약하는 마음의 근력을 가리킨다. 오지앙은 불행을 원료로 행복을 제조할 수 있다고 보는 이 개념이 막연하고 낙관적인 허언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그는 긍정심리학이 절망을 극복할 힘이나 의욕이 없는 사람들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한다면서 이렇게 내뱉는다. “나는 고약한 질병을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긍정심리학을 참기가 힘들다. 질병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며 우리 자신과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는 도전 과제라느니 질병이 우리의 진가를 드러낼 수도 있는 중요한 시험이라느니 하는 개수작 말이다.”
고통은 고통일 뿐이라는 것이다. 2013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그는 자신을 ‘사회 폐기물’로 느꼈다. 오지앙은 치료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몸이 쇠약해지는 와중에도 꿋꿋이 버티는 사람, 의사의 권고를 따르는 사람,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해. 그는 이런 환자의 상황을 ‘천일야화’의 이야기꾼 셰에라자드에 비유한다. 셰에라자드는 죽음을 미루기 위해 매일 밤 이야기를 지어내고 결말을 다음 날로 미뤄 목숨을 부지한다. 자신 역시 셰에라자드처럼 의료체계 소비자, 질병 전문가로서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서 자신을 연출하면서 죽음을 끝없이 미룬다는 것이다. 저자가 병에 대해 내린 결론은 고통을 미화하는 관점을 버리고 아픈 몸과 같이 살면서 죽음을 유예하는 것이다.
자기 병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은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 자기 병을 은유적인 에세이로 남긴 미국 작가 수전 손택, 어머니의 병에 대해 쓴 프랑스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의 얘기도 제법 들어 있다. 질병에 관한 지식인들의 사유를 일별하는 재미도 있다. 미주만 238개에 참고문헌 목록만 10쪽이 넘는다. 분석철학자의 저술이라 복잡하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형이상학적 장식이 없는 병과 죽음의 철학을 제시한 철학자는 별로 없었다. 이것은 투병의 현실과 고통에 가장 가까운 성찰이다. 그의 얘기는 질병의 고통을 견디고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의 의식과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다. 이 때문에 ‘고통을 이겨내라’는 사회적 압력에 억눌린 환자에게 해방감을 주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는 책이 나온 지난해 예순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철학자가 병을 분석하는 동안에도 ‘길고 아픈 밤’의 끝은 찾아왔던 것이다. 오지앙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을 냉철하게 바라봤다. 그는 “친구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연민이 깔려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친구들이 나를 위해 장을 봐 주고 설거지를 해 줄 때면 굉장히 행복하다”고 했다.
책 속의 이 역설적인 문장에 눈길이 갔다. 오지앙은 연민을 토대로 병자를 위해 하는 온갖 위로의 언설을 비판했지만 아픈 자신을 돌봐주는 지인들의 방문과 친구의 도움을 아이처럼 기뻐했다. 이 책은 누구나 맞게 될 길고 아픈 밤에 대한 정직한 통찰이고 확인이다. 부제는 ‘죽음을 미루며 아픈 몸을 생각하다’. 2017년 프랑스 심리학 특상 수상작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죽음 앞둔 자여, 고통을 미화 말라
입력 2018-12-2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