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나무가 사라졌잖아? 갯벌 한가운데 빈 캔버스가 덩그러니 있을 뿐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나무 작가’로 통하는 사진작가 이명호(43)씨는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해 찍은 작업으로 단박에 유명해졌다. 캔버스에 나무가 오롯이 드러나 회화 같은 느낌을 주니,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교묘하게 허무는 미술사적 기여를 인정받아서다.
그런데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신작 개인전에는 작가의 상징 같은 나무가 사라졌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나무는 어딨죠?”라고 묻는 질문에 씩 웃으며 “찾아보세요”라고 답했다. 나무는 바로 캔버스 뒤에 숨어 있었다. 전시 제목이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Nothing, but)’인 것은 그래서다.
이번 작업은 관객과 작가 사이의 숨바꼭질 같아 보는 재미가 있다. 사라진 나무가 캔버스 어디에 있을지 찾는 관객을 향해 작가는 “나는 캔버스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고 혼잣말하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것이다.
신작 사진들은 이전 나무 연작이 나온 경기도 화성 시화호 갯벌에서 찍었다. 또 다른 사진 촬영 장소인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의 작품 사진은 캔버스 뒤에 나무가 아닌 바위가 숨어 있다. 그러니 과거와 현재의 숨바꼭질 놀음 같기도 하다. 연말을 맞아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고 주문하는 것 같은 전시다.
현대갤러리에서 5년 만에 개최된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기존 작품인 ‘나무 연작’ ‘신기루 연작’ 외에 신작으로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9분간의 레이어’ 등 20여점을 내놨다. 작가는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장 폴 게티 미술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1월 6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캔버스 뒤에 숨은 바위·나무 찾아보세요
입력 2018-12-19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