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애끊는 마음 담아 쓴 딸 백혈병 극복기

입력 2018-12-22 04:00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행복한 가정은 미리 누리는 천국”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에 담긴 무게를 우린 얼마나 실감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가족 중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거나 지독한 병이 걸린 뒤에야 “행복한 가정은 미리 누리는 천국”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국민일보 기자인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책에 담긴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는 “가정보다는 특종을 좇던” 기자였고 “일이 삶의 전부인 양” 살던 직장인이었다. 저자의 삶이 바뀐 건 2016년 1월, 당시 세 살이던 둘째 딸 인영이가 급성림프구성백혈병 판정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조난을 당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모든 게 막막했고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저자는 페이스북에 위로와 격려를 호소하는 글을, 애끊는 부정(父情)의 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다’는 저자가 3년 넘게 썼던 일기를 엮은 작품이다.

즉, 이 책은 아빠가 딸을 대신해 써 내려간 투병기이고, 한 중년 남성의 성장기이며, 비슷한 처지에 놓인 환아들에게 바치는 응원가라고 할 수 있다. 가슴이 뻐근해지고 코끝이 매워지는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마트에서 물놀이 용품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에 눈물을 쏟고, 놀이공원에 딸을 데리고 갔을 땐 남들처럼 평범한 가족이 된 것 같아 눈시울을 붉힌다.

그렇다고 무겁고 까라지는 이야기만 담긴 건 아니다. 물심양면으로 저자를 돕기 위해 나선 직장 동료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 대목은 뭉근한 감동을 선사한다. 저자는 “내가 아파보니 아픔은 나누면 조금은 덜 아프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적었다. 국내 병원의 엉망진창 시스템을 꼬집거나 “1시간 대기 1분 진료”가 일반적인 의료계 현실을 비판한 내용도 비중 있게 실려 있다.

인영이의 길었던 항암 치료는 지난 9월 끝이 났다. 인영이는 수백 번의 채혈을 견뎠고 어른도 참기 힘들다는 골수 검사를 버텨냈다. 책에는 저자가 딸에게 띄운 러브레터도 실려 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네가 까까머리가 됐을 때 아빠는 비로소 아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어. 아빠를 닮지 않은 멋진 녀석과 너를 결혼시키는 것을 아빠 생의 목표로 정했단다. …이 편지는 책으로 활자화돼 간직할 수 있을 테니 결혼식 전날에도 읽게 할 테야. 왜냐고? 다른 녀석에게 가기 전 마지막으로 아빠의 짝사랑을 기억해달라는 소박한 바람이랄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