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초등학생 시절 어린이 과학 잡지에서 이상한 글을 읽었다. 개괄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①외국에서 대규모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②그 나라에선 이때다 싶어 여행 상품인 ‘메뚜기 견학 투어’를 마련했다. ③그런데 이 투어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④메뚜기들이 초록색 옷을 입은 여성을 식물성 먹이로 착각해 무참히 먹어치운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끔찍한 스토리인데 소년은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당시엔 메뚜기에 잡아먹히고 싶다는 엽기적인 장래희망까지 품었었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 후 나의 꿈은 초록 옷을 입고 메뚜기 떼 속으로 뛰어들어 온몸으로 메뚜기와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되었다.”
“메뚜기와 사랑을 속삭이는” 꿈을 꿨던 소년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마에노 울드 고타로(38)다. 일본의 곤충학자인 그는 ‘설국의 고장’인 아키타에서 태어나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며 곤충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사막메뚜기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곤충학자의 인생 궤적이다. 문제는 박사가 된 다음부터. 파브르처럼 과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는 건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다. 저자의 꿈은 “의자를 획득할 수 있는 박사”, 즉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이었다. 하지만 메뚜기 연구로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었다. 결국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무기는 논문밖에 없었다. 탁월한 연구 성과가 필요했다. 책상물림 학자였던 저자는 사막메뚜기의 대륙인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은 앞날이 막막했던 젊은 학자가 아프리카에서 벌인 좌충우돌 모험담을 담고 있다. 연구의 타깃으로 정한 건 아프리카 반사막 지대에 서식하면서 농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사막메뚜기. 저자는 2011년 4월 ‘아프리칸 드림’을 꿈꾸며 사막의 나라 모리타니로 향한다.
“지금까지 메뚜기 연구 관련 정보는 전 세계적으로 실험실 내에서 얻어진 것이 대부분이고, 야생에서 메뚜기를 관찰한 예는 극히 드물다. …메뚜기가 야생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아직도 수수께끼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야생에서 사막메뚜기를 오로지 관찰만으로, 그들이 사막에서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대규모로 발생하는지 그 수수께끼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실제로 메뚜기 연구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물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었다. 모리타니 사막메뚜기 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기존 논문은) 제목만 봐도 지긋지긋해요. 메뚜기 근육의 움직이는 신경이 어쩌고저쩌고. 그런 연구로 메뚜기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습니다. 현장과 실험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고, 요구되는 것과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현장과 실험실 사이”에 있는 간극을 메꿀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노력만 한다면 원하는 결과를 손에 거머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엄청난 가뭄이 덮치면서 메뚜기가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설마 메뚜기 없는 상황이 생길 줄이야. 최악이다. 떼로 발생한다던 메뚜기가 흔적도 없다니, 대체 나는 뭐 하러 아프리카까지 왔단 말인가. 메뚜기를 잃고, 내가 얼마나 메뚜기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를 통감했다. 내게서 메뚜기를 빼앗아간다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에게 남은 건 “병아리 오줌만큼도 안 되는 자료”였다. 일본 학술진흥회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기로 한 기간은 고작 2년. 이 기간이 하염없이 흘러가버리자 저자는 100만엔이 예치된 자신의 통장을 헐어 쓰면서 메뚜기 연구에 몰두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저자는 “입술은 키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분할 때 깨물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연구를 계속하려면 누군가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잡지에 연구 활동을 전하는 글을 게재했고, 다양한 홍보 활동에도 나선다.
이렇듯 간신히 버티고 견디면서 연구자의 길을 걸어가는 저자의 태도는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서점가에 차고 넘치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도전을 독려하는 얄팍한 에세이들과는 결이 다르다.
책에는 저자의 기상천외한 모험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는 밤이 이슥해졌을 때 사막에서 메뚜기를 좇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전갈에 쏘여 사막에서 객사할 뻔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독특한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곤란한 상황을 마주한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자가 아프리카에서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는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지 않다. 그는 “논문을 거의 발표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공개할 수 없다는 사정”이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적어두었다.
하지만 독자에게 그가 어떤 새로운 발견을 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인생을 걸고 메뚜기와 사투를 벌인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테니까.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는 새해를 앞두고 마음을 다잡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는 금주의 책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정규직 곤충학자가 되려는 젊은 연구자의 모험담
입력 2018-12-2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