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민영기업 사면?…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회장, 중국 국가 유공자 100인 선정

입력 2018-12-19 04:03
사진=AP뉴시스
마윈(앞줄 가운데) 알리바바 회장과 마화텅(앞줄 왼쪽) 텐센트 회장 등 중국 기업인과 유명 인사들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경축대회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이날 행사에서 개혁개방에 기여한 공로로 마 회장 등 100명에게 표창을 수여했다. AP뉴시스
시진핑(習近平·사진) 중국 국가주석이 개혁개방 40주년 경축 행사에서 ‘중대 연설’을 했다. 그러나 이목을 집중했던 서방의 기대와 달리 구체적인 개방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기존의 정책기조와 방침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쳤다. 서방 언론들은 ‘말잔치’라고 깎아내렸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중국 위협론’을 의식해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패권은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중국몽(中國夢)과 세계 일류 군대 건설 등 초강대국의 야심을 숨기지 않으면서 기존에 중국이 걷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시 주석은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개혁개방 40주년 경축대회’ 연설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개혁개방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동안의 성과를 자찬했다. 시 주석은 “우리는 신시대에 개혁개방을 계속 추진해 ‘2개 100년’(공산당 창당 및 신중국 성립 100주년) 목표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며 “개혁개방은 중화민족 발전 역사상 위대한 혁명”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중국 경제의 성장을 보여주는 수치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시 주석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1978년 3679억 위안에서 지난해 82조7000억 위안으로 증가해 연평균 9.5% 성장했다”면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8%에서 15.2%로 높아졌고, 세계 2위 경제대국, 1위 물류무역 국가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대 연설’에서 미국 등 서방의 기대에 부합하는 획기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았고 개혁개방 원칙을 재차 천명하는 수준에 그쳤다. 미국이 “중국은 시장개방을 떠들어댈 뿐 구체적인 조치는 내놓지 않는다”고 비판한 것처럼 공허했다.

시 주석은 오히려 “배가 거친 파도를 만나고 가파른 길을 등산하는 것처럼 앞으로 가지 않으면 후퇴한다”며 중국식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 “우리는 흔들림 없이 국유경제의 발전을 강화하고, 비국유 경제의 발전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이 중국 정부의 국유기업 지원을 핵심 ‘비시장적 조치’로 꼽는다는 점에서 시 주석의 발언은 다소 거침없어 보였다. 시 주석이 구체적인 시장개방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서 곧 열리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모종의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시 주석은 미국을 겨냥한 다소 공격적인 표현도 사용했다. 시 주석은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강자임을 내세워 약자를 깔보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은 방어성 국방 정책을 견지하고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정당한 이익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주권과 안전,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세계 일류 군대를 건설해야 한다”는 강군몽(强軍夢)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미 ‘1인 권력’ 구축과 ‘장기 집권’ 길을 연 시 주석의 절대권력도 개혁개방 40주년 행사를 통해서 드러났다. 이날 인민대회당 안에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당 중앙의 지도 아래’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등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자신이 핵심인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를 것을 거론하며 핵심 사상인 ‘4개 의식’ 등을 강조했다. ‘4개 의식’은 ‘시진핑 신시대 사상’의 핵심으로, 시 주석에게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정치·대국·핵심·일치를 의미한다.

중국 정부는 40주년 경축대회에서 개혁개방에 중대한 공헌을 한 100명과 함께 외국 우호인사 10명을 포상했다.

유공자 100명에는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로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투유유 교수, 농구스타 야오밍, 중국 여자배구팀 감독 랑핑 등이 포함됐다. 또 마윈 알리바바 회장, 마화텅 텐센트 회장, 리옌훙 바이두 회장 등 3대 인터넷기업 창업자와 허샹젠 메이더 회장, 류촨즈 레노버 회장 등 민영기업 대표들도 있었다.

특히 최근 알리바바 회장직에서 물러난 마윈이 유공자석에 앉아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마 회장은 지난 9월 돌연 은퇴선언을 한 데 이어 알리바바 그룹 소유권도 포기한 것으로 알려져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또 중국 민영기업 총수들이 잇따라 구금·실종되면서 중국에서 민영기업가는 ‘파리 목숨’이란 얘기도 나돌았다. 이 와중에 민영기업을 퇴장시키고 국영기업의 역할을 늘린다는 국진민퇴(國進民退) 논란도 불거졌다. 이는 개혁개방 확대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내세운 중국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이번 행사를 통해 마 회장 등 3대 인터넷기업 창업자들을 개혁개방 유공자로 부각시킨 것은 중국이 민영기업을 아주 중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10명의 포상 외국인사에는 고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오히라 마사요시 전 일본 외무상,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등이 포함됐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