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등골 빼는 ‘보이스피싱’ 활개… 올 피해액 3000억 넘었다

입력 2018-12-19 04:00

보이스피싱 연간 피해액이 처음으로 3000억원을 넘어섰다. 서민 주머니를 터는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자 정부는 대포통장 처벌, 범죄조직 단속 강화, 홍보 강화 등의 종합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해외 인터넷전화의 번호 변작(변조) 등에서 미흡한 ‘반쪽 대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민의 쌈짓돈이 중국 등 해외 범죄조직에 유출되고 있어서 정부가 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18일 전기통신금융사기 방지대책 협의회를 열고 보이스피싱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3340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치다. 지난해 전체 피해액(2431억원)보다 무려 37.4%나 늘었다.

특히 최근 보이스피싱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20대 여성은 검찰 등 권력기관 사칭에, 40, 50대는 대출빙자형 사기에 취약한 점을 노린다. 올해 20, 30대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736억원으로 60대 이상(720억원)보다 더 많다. 피해 급증의 이면에는 모바일 간편송금 등 편리해진 금융 서비스가 영향을 미쳤다. 사기 수단도 전화, 문자메시지를 넘어 모바일 메신저, 간편송금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수법도 정교해지고 첨단화되고 있다. ‘나의 사건 조회’ 기능까지 복제한 가짜 검찰 홈페이지를 만들 정도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신종 사기 수단에 강력 대응키로 했다. 우선 보이스피싱에 동원되는 가짜 공공기관 홈페이지 등에 대한 차단 조치를 강화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우회접속으로 운영되는 홈페이지까지 막을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 도입을 추진 중이다.

대포통장 단속·처벌도 세진다. 대포통장을 양도한 경우 처벌이 징역 3년 이하에서 징역 5년 이하로 높아진다. 법무부는 보이스피싱 사기범을 검거하면 범죄수익을 몰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근본 원인까지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전화번호 변조와 관련한 대책은 부족하다. 현재 보이스피싱은 해외 인터넷전화의 앞자리가 ‘070’이 아닌 ‘02’ ‘010’으로 걸려오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변조된 전화번호가 전체 보이스피싱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범죄조직들은 국내에서 인터넷전화에 가입한 후 해외에서 인터넷을 연결해 전화를 쓴다. 이런 경우 발신 표시되는 전화번호의 앞자리는 ‘070’이어야 한다.

법적으로 통신사는 해외전화의 경우 별도로 표시를 해야 하지만, 범죄조직들은 변조기술을 이용해 이를 우회한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선 변조에 필요한 장비가 해외 사이트에서 2000달러에 판매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대형 통신사에서 회선을 빌리는 별정통신사 대표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번호 변조를 돕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변조된 번호를 통신사에서 사전에 걸러 내거나, 표시해준다면 보이스피싱 예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에도 검찰 같은 공공기관의 전화번호로 변조하는 경우 미리 통신사 시스템에 등록해놓고 사전 차단하는 기술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기관 전화번호를 사칭한 전화 69만7000여건, 문자메시지 3292만건이 사전 차단됐다.

과기정통부와 통신사들은 일반 전화번호로 변조해 통화하는 것까지 사전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런 부분들이 해결돼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어서 해결 방법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별정통신사를 더 엄격하게 단속·제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대책에서 과기정통부는 발신번호 변작 신고가 다수 접수된 통신사업자에 대한 현장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다.

번호 변조에 연루된 별정통신사에 대한 처분도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이후인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번호 변조에 연루된 별정통신사들은 146건의 행정 처분을 받았지만, 과태료 부과는 12건에 그쳤다. 영업정지는 1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영업정지나 등록 취소 등의 강력 제재가 필요하다”며 “아예 변조된 번호는 차단하는 방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