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와 2년 전 서울 지하철 구의역 사고에서 숨진 ‘김군들’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두 사건 모두 사내하청 노동자, 청년들이 희생됐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죽음이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책임져야 할 사용자의 의무까지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를 방지할 법제정과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부조리가 만연된 이 같은 상황에서 교회와 신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기독교 신앙에서 노동과 직업은 ‘소명(vocation)’으로 불릴 만큼 고귀하다. 하지만 아담의 범죄 이후 죄악이 들어오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땅을 보존하고 가꿔야 할 수단으로 주어진 노동은 생존을 위한 괴로운 투쟁으로 변했다.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창 3:19)라는 선언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타락한 인간 본성은 경제 구조를 왜곡했다.
구약성경 전도서는 노동하는 인간의 현실을 그대로 전한다. 노동은 열매가 없고 낙심케 할 수 있으며(2:4~11) 결국에 헛된 것일 수 있으며(2:18~23) 악한 동기로 멍들 수 있다.(4:4) 최종적으로는 죽음으로 허망하게 끝날 수도 있다.(9:10)
영국의 저명한 복음주의 구약학자 크리스토퍼 라이트 박사는 “노동하는 자로서의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역설에 대한 전도서의 관찰은 땅에 대해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가 어떻게 작용하고 인생에 어떤 효과를 낳는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며 “인간의 타락 상태에서 탐욕과 불만족은 경제 성장에 병적으로 집착돼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군들의 비극에서 드러난 비정규직과 하청구조 모두 더 축적하려는 인간 욕망의 상태를 방증한다. 이는 때로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압제와 무책임한 행동으로 연결된다. 구약성경 잠언은 이를 간파했다. “가난한 사람이 경작한 밭에서는 많은 소출이 날 수도 있으나 불의가 판을 치면 그에게 돌아갈 몫이 없다.”(13:23, 새번역) 정규직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던 비정규직 청년이 불의한 구조로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라는 가인의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는 지난 13일 성명을 발표하고 “고 김용균 청년의 죽음을 계기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 행렬을 멈출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고 원청 기업에 분명한 책임을 묻는 법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NCCK 정평위는 성명에서 “하나님은 아벨의 피가 외치는 호소를 들으셨고 그 죄를 심판하셨다”며 “또 다른 아벨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NCCK 정평위는 20일 오후 7시 충남 태안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김씨를 추모하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바라는 기도회를 열 예정이다.
홍인식 순천중앙교회 목사는 “기독교가 욕망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강화한다면 안타까운 일들을 막지 못한다”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물질과 하나님의 복을 연결하려는 악습을 끊자”고 말했다. 홍 목사는 “교회는 신자들이 욕망을 버리는 삶을 살 것을 강조하고 이웃의 형편을 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상목 우성규 장창일 기자 smshin@kmib.co.kr
성경의 눈으로 본 ‘김군들’의 눈물
입력 2018-12-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