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큰 불이 났다. 이 불로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화재현장에 출동한 소방 굴절차는 도로 양쪽 갓길에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500m를 우회하는 바람에 초기진화 골든타임 30분을 허비해야만 했다. 불법 증축과 비상구를 막는 장애물 등도 피해가 커지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안전불감증’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화재 발생 후 1년,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18일 오후 찾은 화재현장 인근 도로엔 여전히 차량들이 무분별하게 주차돼 있었다. 1년 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비슷한 사고 시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소방차가 도로에 갇히는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 일대 도로에는 주·정차가 불가능한 황색 실선이 아니라 흰색 실선이 그어져 있다. 도로교통법상 주·정차가 가능해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 아니라 무분별한 주차인 셈이다. 지역에선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업소가 많은 만큼 도로에 주·정차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민은 “다중이용업소 주변은 주·정차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며 “이 일대는 도로 양쪽 갓길에 주차된 차들로 항상 넘쳐난다. 제천화재 참사를 계기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제천시 관계자는 “화재 현장 일대는 불법 주·정차 단속구역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공영주차장이 없고 상인들의 반발도 있어 단속과 계도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제천시는 내년 2월부터 진행될 화재 건물과 부동산에 대한 경매에 참여할 계획이다. 시는 낙찰에 성공하면 건물을 철거한 뒤 공영주차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사고 이후 시는 우선 지급했던 유족 위로금과 장례비용 등 11억6000만원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한 상태다.
업소들의 안전불감증도 여전했다. 충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소방·건축·전기·가스 등 86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화재안전특별조사 추진단은 지난 7월부터 내년 12월까지 화재 및 인명피해 가능성이 높은 도내 취약시설 1만5377곳에 대해 특별 조사를 하고 있다.
11월말 현재 3638곳을 점검한 결과 70.5%인 2565곳에서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위반 사항은 불법 건축물 설치, 피난시설 장애물 적재, 방화문 훼손·철거 등 1만3906건에 달한다.
청주의 한 상가는 1층과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에 설치됐던 방화문을 철거했고, 한 노인복지장애인시설은 통로와 보일러실 등을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판넬로 불법 증축해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점검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업소는 여전히 비상구에 물건을 쌓아놓고 있는 등 제천화재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돈묵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전국적으로 지난 1년 동안 숱한 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안전불감증은 여전한 것 같다”며 “안전불감증을 개선하려면 습관화된 훈련과 생활화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국민 개개인 모두가 화재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처벌 기준 강화보다는 홍보와 교육이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제천=글·사진 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
주·정차 가능 ‘흰색 실선’ 그대로… 양쪽 갓길 차량들로 빼곡
입력 2018-12-19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