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수처리업체, 정화조 작업장 등 유해화학물질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 곳에서 근로자가 유독물질에 노출돼 생명을 잃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방독면 등 보호 장비를 착용했다면 위험을 피할 수 있었지만 현재 관련법상 유해화학물질 전용 장비를 구비할 책임은 없다.
지난달 28일 부산 사상구의 폐수처리업체 A사에서 발생한 황화수소 가스 유출사고로 17일까지 근로자 3명이 숨졌다. 사고 당시 이들은 방독면 등 보호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았다. 황화수소용 방독면 마스크를 썼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염산·황산 등 유해화학물질을 직접적으로 취급하는 업체가 아니라면 안전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A사는 직접적으로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지는 않는다.
사고 원인도 유해화학물질이 아니라 알칼리성분 폐수를 ‘집수정’(물을 모으는 우물)에 옮겨 담는 과정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난 탓으로 추정됐다. 유해화학물질·유기화합물질을 다루지 않으므로 화학물질관리법상 방독면 착용 의무가 있는 사업장도 아니다.
A사를 조사 중인 낙동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폐수처리업체는 직접적으로 황산, 염소 같은 유해화학물질을 쓰는 곳이 아니어서 황화수소 유출 위험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병철 전남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하청업체나 단기간 근로자가 많은 현장일수록 관리 감독이 제대로 안 되거나 안전교육이 미흡하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화학물질을 직접 관리하지 않았음에도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는 빈번했다. 2016년 충북 청주의 한 유제품 가공공장에서 정화조 점검 중 유독가스가 유출돼 근로자 3명이 의식을 잃었다. 지난해 7월 전북 군산의 맨홀 정화조에서 펌프교체 작업을 하던 근로자 2명도 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모두 방독면 등 안전장비가 없었다.
다만 A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 장비 착용 의무를 위반한 책임을 질 가능성이 크다. 화학물질안전원 관계자는 “직접적으로 황화수소 등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큰 범주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방독면 의무화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A사가 방독면을 벽면에 10여개 구비하고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다른 보호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방독면을 착용하지 않고 비치만 하는 것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화관법의 적용을 받으면 화학안전관리원이 지정한 6종의 유해물질 전용 방독면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방독면에 정화통을 부착하는 것도 의무사항이라 황화수소·아황산·암모니아 등의 노출 피해도 줄일 수 있다.
A사의 과실 자체는 인정이 됐다. 환경청은 A사를 화관법 제57조 위반으로 형사 고발했다. 업무상 과실로 화학 사고를 일으켜 인명피해를 입힌 혐의다.
마 교수는 “갖가지 화학물질이 포함된 폐수의 경우 황화수소가 발생하는 일이 충분히 예상되는 위험이고, 밀폐된 공간인 집수정 자체의 산소농도를 측정해야 하는 것도 법적 의무사항”이라며 “업체에도 방독면 구비 등 사고예방에 소홀한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사상구는 A사가 폐수처리 과정에서 물환경보전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파악 중이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방독면만 썼어도 살았을 텐데… 안전관리 소홀 왜 되풀이되나
입력 2018-12-1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