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화와 간암 진단을 받은 뒤 간 이식으로 유명한 종합병원을 찾았다. 아내는 의료진에게 간 이식 수술을 위해 자신의 간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간 이식은 그렇게 진행되는 게 아니라며 수여자뿐 아니라 공여자도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내는 미국에 있는 첫째와 둘째 딸을 불렀다. 워낙 몸무게가 나가다보니 한 사람만 기증해서는 이식할 간이 부족할 수 있어서였다. 검사를 하니 두 딸의 간으로 이식이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각각 서른 살, 스물일곱 살인 딸 둘은 아빠를 살리기 위해 수술대에 오르겠다고 나섰다. 만일 수술이 잘못되면 수술 도중이나 이후에 죽을 수도 있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둘째 딸은 얼마나 무섭던지 수술동의서 서명 직전 ‘난 못 하겠다’는 말이 입안에서 빙빙 돌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언니와 손을 잡고 태연한 척 서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기도했단다. “하나님, 아빠와 언니, 저까지 수술하면 엄마가 너무 힘드니 언니는 말고 내 간 하나로 다 이식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수술 당일, 둘째 딸은 수술이 시작된 지 12시간이 지나서야 수술실에서 나왔다. 보통 8~10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보다 더 지연된 것이었다. 둘째 딸이 나온 뒤엔 내가 수술실로 들어가 16시간 동안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 옮겨진 나는 누군가 툭툭 건드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눈앞엔 집도의가 서 있었다. 그는 “수술이 잘 끝났다. 둘째 딸 간이 크고 좋았다”는 말을 남겼다. 그제야 둘째 딸만 수술대에 오른 사실을 알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목숨을 건 자식의 희생에 눈물이 계속 흘렀다.
한국교회 성도의 기도 및 성원은 암 진단부터 회복 때까지 나를 지켜준 원동력과 같다. ‘박종호가 간암 투병 중인데 수술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국민일보와 극동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한국교회 내 중보기도 및 병원비 모금 운동이 본격 시작됐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와 배우 고은아 권사, 한국예수전도단 등이 수술비를 보내왔다. 찬양사역자 고형원 전용대 송정미 최인혁 최덕신 하덕규 등이 주축이 돼 수술비를 모금하고 회복을 기도하는 자리도 열렸다. 간 이식 수술 열흘 전 서울 서초구 횃불선교회관에서 열린 ‘박종호의 프렌즈-박종호 다시 노래 부르게 하라’ 집회였다. 이곳에 1000여명이 모여 나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셨다.
이 밖에도 수많은 개인과 단체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음을 안다. 지금도 국내외 교회로 찬양집회를 나가면 완쾌를 위해 기도해준 분들을 만난다. 중환자실에서 나와 무균실에서 회복 중일 때도 병실 안에 아지랑이가 떠다니는 것을 봤다. 허깨비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여럿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부족한 종을 중보기도로 살린 한국교회 성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