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 활력 높이기에 총력전을 선언했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이자 경기 방어, 일자리 확충, 기업 투자 확대에 전방위로 나선다. 정부는 470조원 예산 풀기, 최소 12조4000억원의 민간투자 유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시행이라는 ‘응급약’을 내밀었다.
경제 활력 높이기를 소득주도성장보다 앞에 배치하고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등 6조원 규모의 기업투자 프로젝트를 강력 추진한다. 공공시설에 6조4000억원 규모의 민자(민간투자)사업도 유치한다. 광역권 교통망 등 대규모 지역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길을 터준다.
정부는 17일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시장에서 최소 12조4000억원을 끌어오겠다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에 최소 6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기업투자 프로젝트에 속도를 붙인다. 가장 큰 사업은 현대차그룹의 105층 신사옥 건립이다. 정부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짓는 현대차 GBC에 대한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다음 달 마무리할 계획이다. 수도권정비위는 인구 집중 대책이 부실하다며 사업 승인을 세 차례 보류했었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현대차 GBC 착공이 가능할 전망이다. 정부는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1조6000억원 규모의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도 지원한다. 5000억원 규모의 서울 창동 케이팝(K-POP) 공연장, 2000억원 상당의 자동차 주행시험로 건설 공사도 빠르게 추진한다.
민간이 투자하는 공공사업의 문도 크게 연다. 현행법은 도로와 철도 등 53개 공공시설에만 민자사업이 가능토록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법을 개정해 모든 공공시설에 민자사업을 허용키로 했다. 총 사업비 500억원 미만인 민간제안사업은 비용·편익 분석을 공공투자관리센터에서 국토연구원 등으로 이양해 사업 속도를 높인다.
예비타당성조사의 벽도 허문다. 정부는 보다 원활한 SOC 투자를 위해 예비타당성조사제도 개선을 추진키로 했다. 예비타당성조사는 대규모로 재정을 투입하기 전 적합성을 따져보는 절차다. 정부는 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기준을 총 사업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평가를 할 때 지역 균형발전, 사회적 가치 등을 반영키로 했다. 일부 사업에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 정부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광역권 교통·물류망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방안을 내년 상반기에 검토키로 했다.
또한 정부는 이번 주에 3기 신도시 입지와 광역교통 대책을 발표한다. 현재 광역급행철도(GTX) A노선(경기도 파주 운정∼동탄)은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GTX C노선(경기도 양주∼수원)은 예비타당성조사 문턱을 넘었다. B노선(인천 송도∼경기도 마석)의 경우 예비타당성조사 중간 검토에서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세종~안성 고속도로 등 공기업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추진 중인 건설사업의 행정 절차도 간소화된다. 이에 따라 양평~이천 고속도로도 내년 중 조기 착공이 가능해진다. 내년에 지역 문화·체육시설을 짓는 생활SOC 사업에 8조6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여기에다 공유경제에도 힘을 싣는다. 숙박공유 서비스를 옥죄는 규제를 풀고, 세종과 부산 등에 대여·반납구역 제한이 없는 카셰어링 서비스를 시범 도입한다.
정부의 내년 경제정책은 ‘분배’에서 ‘성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걸로 읽힌다. 소득주도성장을 유지한 채 공급 측면의 성장정책을 추가로 제시해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경제 여건을 감안해 투자 확대 등 경제 활력을 제고하는 데 일차적인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기 경기부양’에 집중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에도 제조업의 위기, 이해관계자로 얽히고설킨 규제, 새로운 산업을 가로막는 갈등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풀 실마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민간·공공투자 대부분이 자발적인 시장의 반응이기보다 정부 주도 아래 이뤄진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기존보다 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SOC나 민간투자의 경우 꼭 필요한 곳에 투입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시장이 알아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470조원의 재정을 투입하는데 따른 효과, SOC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은 여전히 논란을 부른다. 김 교수는 “470조원의 나랏돈이 보조금 등에 집중될 경우 성장 기여도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며 “SOC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도 위험한 측면이 있는데, 경기 부양책으로 쓰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규제 혁신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렌터카의 반납·대여장소와 관련한 규제를 풀어주는 ‘카셰어링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지만 카풀 서비스를 둘러싼 갈등 등을 해소할 방법은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알맹이인 ‘카풀’이 빠진 공유경제 활성화하라는 비판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혁신성장 정책을 발표했으나 여전히 기업환경 개선은 불확실해 보인다”며 “이해당사자들이 얽혀 있는 규제 체계를 개선하고 혁파하려는 노력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
6조원 규모 기업투자 등 최소 12조원대 민간투자 추진
입력 2018-12-1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