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1월 완공 목표,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 인터뷰
“우연히 만난 은퇴 선교사에게 그분들의 실상을 듣고 ‘큰일 났구나’ 생각했어요. 뒤통수가 아찔했습니다.”
홍정길(76) 밀알복지재단 이사장은 ‘은퇴 선교사’ 얘기를 꺼내자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2015년부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 은퇴 선교사들을 위한 생명의빛홈타운을 조성하고 있다. 내년 11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은퇴 선교사에 대한 한국교회의 무관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은퇴 선교사를 위한 거처를 마련하고 있는 홍 이사장을 만났다.
-은퇴 선교사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갖고 있었습니까.
“12년 전인 2006년부터였습니다. 우연히 교회를 개척했을 당시 해외에 파송한 선교사가 찾아왔습니다. 휴가를 냈냐고 묻자 ‘은퇴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 선교사는 ‘한국 집값이 너무 비싸 미국에 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있는 분들께 인사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을 잊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던 기억이 납니다.”
-교회들이 선교사들의 은퇴를 잊고 있는 이유가 있을까요.
“많은 교회들이 ‘선교사를 보냈다’는 생각만 하고 한숨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훈련비용부터 정착비용, 교통비 등이 필요합니다. 파송 뒤에는 휴가와 안식년 등도 고려해야 합니다. 애초에 보내는 데도 많은 비용이 들다 보니 선교사들이 돌아온 뒤의 생각은 미루기가 쉬운 구조입니다. 그래서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선교사들이 은퇴한 뒤 한국에 돌아오면 교회도 놀라고, 은퇴 선교사도 당황스러워 하게 되는 겁니다.”
-선교사들도 선교지에서 은퇴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는데요.
“맞습니다. 선교지에 도착한 뒤부터 선교사들은 매 순간 난관에 봉착합니다. 한국선교연구원(KRIM)이 지난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42% 넘는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교회 개척에 힘을 쏟습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현지 언어도 잘 해야겠지만, 문화와 현지의 법도 이해해야 합니다. 열정 넘치던 시절 선교사역에 힘을 쏟고 나면 자연히 은퇴에 대한 생각은 뒷전이지요. 일선 선교사들에게 은퇴 계획을 물어봐도 ‘현지 요양원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겠다’ 정도의 대답만 돌아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치료할 수 없는 큰 병이 생기는 경우에는 한국에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갑자기 은퇴를 하는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야 합니다.”
2017년 한인세계선교사지원재단과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이 선교사 3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은퇴 후 노후 준비를 묻는 질문에 ‘아주 잘 준비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2%(9명)에 불과했다. 반면 ‘준비 안 됨’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절반이 넘는 57%(195명)였다. 관련 통계는 몇 해 전부터 나오고 있지만 은퇴 선교사들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교사들은 은퇴 계획에 막막함을 토로하고 있다.
-생명의빛홈타운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산 정상 근처에 있어서 공간 확보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교회 내 은퇴 선교사 위원회를 만들어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자금도, 마땅한 장소도 없어 난감했습니다. 우연히 동생 목사의 교회(하베스트샬롬교회)에서 기도원을 세우려고 마련한 57만7500㎡(17만5000평)의 대지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동생에게 은퇴 선교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자고 제의했더니 흔쾌히 땅을 나누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중 32만2800㎡(11만6000여평)를 매입했습니다. 마침 경춘고속도로가 개통돼 서울에서 가평까지 가는 시간이 단축됐다는 소식도 함께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기분이었습니다.”(웃음)
-생명의빛홈타운에서 은퇴 선교사들은 어떻게 지내게 될까요.
“은퇴 선교사들을 모시고 지역 사회를 섬기려고 합니다. 사실 은퇴 선교사들은 잘 훈련된 분들입니다. 이슬람 국가를 비롯해 중국이나 아프리카 등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을 익히고 오신 분들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들을 모시고 다문화와 관련된 문제를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다문화 인구는 이제 200만을 넘겼습니다.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생명의빛홈타운이 위치한 경기도 가평 인근의 포천과 남양주 등에 있는 다문화가정은 은퇴 선교사들이 돌볼 수 있습니다. 65세에 은퇴한 선교사들은 10년 동안을 더 섬길 수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은퇴 선교사 문제는 한국교회가 고민해야 할 미래이기도 합니다.
“은퇴 선교사들의 고통을 교회가 품어주고 마음을 열어줘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분들을 제대로 섬겨야 합니다. 은퇴 선교사들이 한국에 돌아와 느끼는 감정은 하나 더 있습니다. 박탈감입니다. 함께 신학대와 신대원을 나온 동기들은 한국에서 원로목사도 됐고 교회에서 노후를 책임져 주는 곳이 있지만 선교사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귀한 사역을 맡긴 만큼 위로도 한국교회가 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 곳에서 오신 은퇴 선교사들이 모이면 시너지 효과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모여야 더 큰 힘을 내는 종교입니다. 다문화가정에 단순히 복음을 전파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 사회와 녹아드는 방법을 설명해 준다면 교회가 다문화가정을 끌어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퇴 선교사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알려주고 이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최적화된 자원들입니다. 생명의빛홈타운이 완공되면 선교사들을 위한 사무실도 함께 제공할 예정입니다.”
-척박한 곳에서 선교하신 분들은 개성도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은퇴 선교사들이 함께 모이면 단점도 있을까요.
“물론 개성 강한 분들이 모이면 처음에는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의빛홈타운은 단계적으로 확장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36가정으로 시작해 장기적으로는 100가정까지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이 기간 동안 적은 수의 은퇴 선교사들을 모시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규칙이나 방법 등을 고민할 생각입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은퇴 선교사들 노하우, 10년은 더 쓸 수 있습니다”
입력 2018-12-18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