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어 교회 개척한 父子, 미자립교회 돕기도 ‘부전자전’

입력 2018-12-18 00:02
류인영(다음세대교회) 류기전(공주 하대감리교회 원로) 목사 부자가 17일 인천 서구 다음세대교회 예배당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함께 연주하고 있다. 두 사람은 작은교회 인테리어 사역을 펼치고 있다. 이곳 예배당 인테리어는 아들 인영 목사가 직접 했다. 인천=송지수 인턴기자

류기전(66) 하대감리교회 원로목사는 아들 인영(37) 목사가 태어난 1981년 충남 공주 계룡면에 교회를 개척했다. 무당이 흔한 계룡면 하대마을에 세워진 첫 교회였다.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도대상자라고 해봐야 노인과 무당, 어린이들이 전부였다.

한 교회를 37년간 담임했지만 누구처럼 번듯한 성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목회 평생 1년 경상비 2500만원 미만의 미자립교회였다. 류 목사는 “무당이 곳곳에 있고 마을 주민이라고 해봤자 150가구가 넘지 않았다. 영적싸움이 심했다”고 회고했다. 그나마 91년부터 시작한 성복어린이집이 효자 역할을 했다. 정성껏 아이들을 돌봤더니 옆 마을까지 소문이 나서 60여명의 어린이들이 몰려들었다.

92년 류 목사는 김경자 사모와 어려운 결단을 했다. 동네 무의탁 어르신을 자택에서 모시고 함께 살기로 한 것이다. 2008년까지 3명의 동네 할머니를 모시며 장례까지 치러줬다. 그가 몰던 승합차는 마을버스이자 앰뷸런스로, 때론 마을의 대소사를 챙기는 화물차 역할까지 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자녀들에게 “교회에 나가고 싶다면 하대감리교회로 가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류 목사는 손재주가 좋았다. 벽돌을 쌓고 정원을 직접 만들었다. 동네사람들은 집수리가 필요하면 류 목사를 찾았다. 2004년엔 어렵게 132㎡(40평) 규모의 교회를 신축했다.

아버지의 손재주는 찬양가수를 꿈꾸던 아들 목사에게 이어졌다. 아들은 평생 남을 도왔던 아버지의 개척교회 정신을 계승하고자 2015년 인천 서구에서 다음세대교회를 개척했다. 미자립교회라는 십자가까지 물려받은 것이다.

아들 목사는 전도사 시절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운 3명의 초등학생을 모아 무료로 베이스기타와 전자기타, 드럼을 가르쳤다. 3명의 소녀는 훗날 프라이드밴드를 결성했다.

신세대 미자립교회 목사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라이드밴드를 키운 경험을 토대로 2016년 크리스천 종합 기획사인 ‘DSM 엔터테인먼트’를 차렸다. 그리고 찬양밴드를 만들고자 하는 작은 교회에 일정기간 강사를 파견하는 ‘작은교회 밴드만들기 프로젝트’(작밴)를 시작했다. 작밴 프로젝트를 통해 400여개 교회에 밴드가 만들어졌다.

류인영 목사는 “작은 교회 목사님 중에 패배주의에 빠져 대형교회를 욕하는 분들이 간혹 있던데,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하나님이 종으로 부르셨다면 분명 각자에게 맡겨진 작은 사역이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작은 교회 목회자는 개척 후 1~2년은 근근이 버티지만 3년째 되는 해부터 대부분 목회 포기를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밴드를 만들어주면 목사님들의 사역에 그렇게 힘이 된다고 한다. ‘작밴 훈련을 받은 학생들이 예배 때 옆에서 드럼을 쳐주고 찬양을 할 때 큰 힘을 얻는다’는 미자립교회 목사님들을 만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귀띔했다.

DSM 앤터테인먼트에는 ‘다윗과 요나단’의 황국명 목사와 찬양가수 강찬 목사, 프라이드밴드 등이 소속돼 있다. 그는 음악 영상 사진 디자인을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공연 장비를 대여하고 음반을 직접 기획·제작하는 일도 한다. 인구 20만명 미만의 도시를 방문해 청소년 및 다음세대를 위한 찬양집회인 워십 투어 ‘웨이크(WAKE)’도 개최한다.

인영 목사는 최근 새로운 사역을 발굴했다. 중소형 교회를 위한 맞춤형 인테리어 사역이다. 재료비와 약간의 인건비만 받고 교회 인테리어를 새롭게 해주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다. 3명의 작은 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공동 목회하는 다음세대교회의 실내 인테리어도 그가 직접 했다. 교회는 현재 지역주민들을 위한 파란우산 카페를 운영한다.

아들의 사역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 류 목사가 입을 열었다. “누가 그러던데요. 목사가 교회 개척 후 예배당을 짓고 자녀를 목사로 세우면 목회에서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성공한 목회자 아니겠습니까. 허허.”

부자는 공통의 아픔이 있다. 아내이자 어머니인 김경자 사모가 지난해 11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김 사모는 당뇨합병증이 있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아버지 목사는 지난 4월 조기 은퇴를 하면서 또다시 어려운 결단을 했다. 은퇴금을 모두 79㎡(24평) 넓이의 사택을 짓는데 쏟아 부은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제일 먼저 호출했다. “아들아, 엄마아빠가 사택이 없어서 무척 고생을 많이 했잖니. 새로 부임한 후임자에게까지 그 고생을 물려주는 건 아닌 것 같다.” 부자는 지난 4월부터 1개월간 먼지를 뒤집어쓰고 조립식 사택을 직접 지었다.

류 목사는 “사택을 완공하고 평생 고생했던 아내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면서 “단 하루만이라도 번듯한 사택에서 아내와 함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들 인영 목사는 목이 메는지 애써 먼 산만 바라봤다.

아들의 나이만큼 미자립교회를 담임했던 부친이 아들에게 던지는 충고는 무엇일까. “인영 목사가 건강한 방법으로 미자립교회의 어려움을 잘 돌파하고 있어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모델이 아닌가 싶어요. 이제는 아들한테 인테리어 기술 좀 배워야겠어요.”

부친 목사는 은퇴 후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미자립교회 개조사역을 하는데, 직접 나무 강단을 짜고 보도블록도 깐다. 나무문을 만들고 화장실도 직접 뜯어 고친다. “작은 교회를 찾아가 시설도 보수하고 받은 용돈은 다른 작은 교회를 찾아 헌금하고 있다”고 웃었다. 13만㎞를 달린 아버지 목사의 승용차 트렁크엔 미자립교회를 ‘변신’시키는 전기톱과 용접기, 에어타카, 콤프레셔 등 장비가 실려 있다. 아들의 차에도 비슷한 목적의 인테리어 장비가 있다. 부전자전이다.

인천=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