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찾은 경남 창원 소재 중소기업 태림의 생산동(공장)은 자동차 조향장치를 만드는 기계음으로 요란했다. 생산라인에서 불과 2~3m 떨어진 곳에는 의외의 공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로 연구·개발(R&D)실이다. 컨테이너박스 형태로 꾸며진 R&D실은 264㎡ 넓이의 제품성능시험실과 132㎡의 기술연구실로 이뤄져 있다.
방음문을 열고 들어선 제품성능시험실은 고요했다. 한창 개발 중인 조향장치가 성능시험기에 연결된 채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소음은 거의 없었다. 연구원 5명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성능검사 데이터를 살폈다. 모은 데이터는 제품 성능 개선에 곧바로 활용된다.
처음부터 생산라인 옆에 지금 같은 R&D실을 둔 건 아니다. 2009년 기술연구소를 두기는 했지만 R&D에 각별히 신경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2011년 350억원에 이르는 매출액을 달성한 태림은 탄탄한 회사였다. 생산품인 기계식 조향장치는 잘 팔렸다. 하지만 위기는 소리 없이 찾아왔다.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조향장치가 급격히 바뀌면서 2012년부터 매출액은 내리막을 걸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태림은 2014년 ‘R&D 투자’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기존 협력사였던 독일의 ZF와 전략적으로 R&D 협력을 맺고 차세대 조향장치 부품 공동 개발에 나섰다. 2016년에는 지금의 R&D실을 완성했다. 태림이 2015년부터 올해까지 R&D에 들인 돈은 72억원에 이른다. 중소기업으로선 적잖은 액수다. 지난해 자율주행차에도 사용할 수 있는 고성능·고품질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반전이 이뤄졌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2900억원 규모의 신규 수주를 따냈다.
현재 태림 직원은 103명이다. 태림은 2020년까지 R&D 인력을 포함해 신규로 70명을 충원할 방침이다. 오경진 태림 상무이사는 “R&D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자동차산업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태림 사례처럼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두뇌’인 R&D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두뇌’ 유치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장지대)로 전락하는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한다. 창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집중 지원에 나서면서 지역경제 부활을 이끌고 있다. 제조업 침체로 지역경제가 무너지는 다른 곳과 달리 창원의 제조업 취업자 수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창원에 있는 정밀부품 제조업체 신승정밀의 김명한 대표는 13일 “생산·제조, 연구, 테스트를 모두 하는 기업만이 제조업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원=글·사진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연구개발 투자로 혁신… 창원 제조업 살아났다
입력 2018-12-14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