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 시설·생산공장이 한 지역에 있어야 제조업 활력↑

입력 2018-12-14 04:00
자동차 조향장치 생산업체 태림의 직원들이 지난 11일 경남 창원 공장 내부에 있는 생산라인에서 제품 출하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태림 제공
글 싣는 순서
① 주저앉는 지역경제
② 번지는 불황의 불길
③ ‘무용지물’ 구조조정
④ 위기 극복의 길
⑤ 변신을 두려워 말라

한국 제조업은 대부분 ‘두뇌’와 ‘손발’이 분리된 이중구조로 운영된다. 기업의 두뇌 역할을 하는 연구·개발(R&D) 기능은 본사와 함께 수도권에 있는 반면 손발(생산)을 맡는 공장은 땅값이나 제품 운송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방에 있다. 이 때문에 R&D와 생산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이중구조는 경제 성장기에는 비용 절감효과를 톡톡하게 낸다. 하지만 생산비용 상승기, 제조업 침체기에 맞닥뜨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업 입장에선 제조시설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다. 산업연구원 이두희 연구위원은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인건비 상승과 설비 노후로 이점이 사라진다. 생산시설은 언제든지 해외로 나갈 수 있어 지역경제 침체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경북 구미가 대표적이다. 구미는 삼성전자 공장이 베트남으로, LG디스플레이 공장이 파주로 옮겨가면서 지역경제가 무너졌다. 전형적인 한국판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장지대)’의 공식을 따랐다.

반면 위기에서 희망을 건져낸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경남 창원이 그렇다. 창원은 조선산업과 자동차 부품산업, 가전제품 제조업체가 밀집한 전통적인 제조업 강세 지역이다. 제조업 불황으로 창원의 경기도 좋지 않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R&D시설 유치’라는 묘수를 찾아냈다. 공장과 R&D시설을 융합하면 기업의 갑작스런 이탈을 막을 수 있다.

창원시가 집중 지원에 나서면서 지역경제는 반등의 실마리를 잡았다. LG전자는 지난해 주방가전 R&D 기능을 창원으로 통합했다. 생산과 연구가 한 지역에서 이뤄지면서 신제품 출시는 활발해졌고 생산도 늘었다. 창원시 관계자는 “창원 전체 수출액의 약 20%를 차지하는 LG전자가 제조업 침체로 공장을 옮겼다면 지역경제는 급격히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국민일보가 전국 광역시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군을 전수조사한 결과, 창원의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해 상반기 14만7900명으로 바닥을 찍은 뒤 서서히 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제조업 취업자 수는 16만1900명, 올해 상반기 16만4300명에 이른다. 인근의 경남 거제의 제조업 취업자 수가 같은 기간 1만명가량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지자체의 노력은 지역 중소기업으로 옮겨 붙었다. R&D 투자를 늘려 ‘날개달기’를 시도하는 중소기업이 늘었다. R&D로 제품 경쟁력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공장이 신나게 돌아가는 선순환 조짐도 나타났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에 따르면 창원국가산업단지 공장가동률은 현재 83% 수준이다. 보통 공장가동률이 85%를 넘으면 호황으로 본다. 창원의 공장가동률은 전국 공단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창원의 변화는 미국이 러스트 벨트에 기업 R&D시설을 집중 유치해 ‘제2 부흥기’를 이끌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 쇠퇴기를 겪던 디트로이트는 최근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무대로 변신했다.

전문가들은 R&D 투자액 1억원당 일자리 0.3개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999~2016년 상장기업 2044곳을 분석한 결과, R&D 투자에 대한 고용탄력성은 0.028(R&D 지출이 1% 증가할 때 고용은 0.028% 증가)에 달했다. 홍우형 한성대 교수는 “R&D 투자는 저성장과 고용 불안이라는 두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창원=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