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433시간 근무’ 과로로 폐 잘라낸 IT 개발자

입력 2018-12-14 04:02
IT개발자 양도수씨는 “야근을 하지 않아도 업무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양씨는 ‘야근을 없애면 IT 산업이 망할 것’이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주52시간 근무가 오히려 업무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은비 인턴기자
인터뷰 동영상은 국민일보 홈페이지와 유튜브 ‘취재대행소 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싣는 순서

① 52시간 일해도 기업은 망하지 않아요
② 피해자는 있었지만 가해자는 없었다
③ 과로사와 과로 자살, 뭐가 다른가요
④ 몰랐고 모른 척했다
⑤ 미국의 실리콘밸리엔 야근이 없다
⑥기준 필요한 ‘표준계약서·야근수당’

IT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갑도 을도 아닌 병과 정 아래”라고 말한다. 최첨단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라는 수식어는 화려한 외관일 뿐이다. 혹독한 야근과 비정상적인 대우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일보는 ‘갑을병정 그 아래, 한국 IT노동자의 한숨’ 시리즈에서 IT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피해자와 가족들도 용기를 냈다.

양도수(43)씨는 IT 업계에서 꽤 유명한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폐 잘라낸 IT 개발자’.

양씨는 IT 노동자로는 처음으로 산업 재해를 인정받았다. 양씨는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뒤 지금은 대기업 쇼핑몰을 관리하는 중소 시스템통합(SI)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양씨의 업무 방식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오후 6시면 직원들을 퇴근시켰다. 양씨는 13일 “야근을 하지 않아도 업무엔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양씨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2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금 근무하는 곳은 어디인가.

“이전 직장에서 근무하다 병을 얻었고, 6년의 소송 끝에 산재를 인정받았죠. 회사에서 해고된 뒤 지금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하이마트 쇼핑몰 등 롯데계열사 시스템을 관리하는 SI업체죠.”

-야근을 하지 않으면 IT 산업이 경쟁력을 잃는다고들 한다. 6시 퇴근이 가능합니까.

“제가 하이마트 (쇼핑몰) 관리자로 오기 전에 애들 2명이 도망갔다고 들었어요. 저는 직원들에게 야근 안 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오후 6시면 퇴근시켰죠. 대신 해야 할 일을 일과시간 중에 하도록 했어요. 결과적으로 업무 성과는 훨씬 좋았어요. 소프트웨어 품질도 좋아졌고요. 오늘(11일)도 주52시간 근로시간제 처벌 유예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어요. 과로가 기업에 만연해 있고 법에 규정된 수당을 못 받는 노동자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처벌 유예가 현실에 부합한 조치인지 묻고 싶습니다.”

-업무 특성 때문에 야근이 많은 건가요.

“야근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 원인은 원청업체가 기존에 세웠던 작업 계획을 수시로 바꾸는 겁니다. 변경을 안 하는 게 최선이지만 정말 바꿔야 한다면 협의해서 조정해야 합니다. 서비스 오픈일은 임박한데 갑자기 ‘사장님이 바꾸라고 했다’ ‘상무님이 마음에 안 든다더라’며 수정을 요청해요. 결국 프로그램은 걸레가 되고 해결은 우리 같은 IT 노동자들이 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탄력근로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야근 수당을 돈으로 지불하고, 지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세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하면 탄력근로제는 사라질 겁니다. 왜냐. 돈을 주기 싫으니까. 그리고 주52시간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하이마트와 일할 때도 야근 문제가 벌어졌습니까.

“서비스 오픈 일을 못 맞출 정도로 자꾸 요구 사항이 생기고 수정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하이마트 A팀장에게 서비스를 오픈하고 나중에 개선하자고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어요. 무조건 맞추라고 했어요.”

야근을 둘러싼 굴곡이 많았다. 지난해 A팀장은 야근 문제로 양씨와 계속 이견을 빚었고, 양씨를 내보내라는 압력을 가했다. 양씨는 온라인에 IT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그의 글이 알려지자, 하이마트는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A팀장은 지방으로 발령났고, 양씨도 하이마트 관련 프로젝트에서 빠졌다. 하이마트는 이후 매월 하청업체 대표들과 간담회 형식으로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주말당직은 신규 업체에 따로 맡기기로 했다. 야근이 사라졌지만 기업의 피해는 없었다.

-2006~2007년 병을 얻었을 당시 농협정보시스템에서 과로를 많이 했나요?

“가장 많이 했을 때 월 400시간 넘게 일했어요. 2006년 11월엔 한 달간 433시간, 12월엔 431시간 근무했네요. 하루 18시간 일하기도 하고 휴일 포함해 한 달에 하루, 이틀 쉬기도 했어요.”

양씨는 결국 과로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오른쪽 폐의 상·중·하엽 중 하엽을 잘라냈다. 치료를 끝내고 회사로 돌아왔지만, 책상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때부터 긴 싸움이 시작됐다. 두 번의 해고와 민사소송이 이어졌다. 그리고 6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2014년 양씨는 법원 조정으로 야근수당의 75%를 받았고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양씨는 인터뷰를 진행한 뒤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양씨를 더 이상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시키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양씨에게는 이런 얘기들이 압박으로 작용했고, 결국 이달 말까지만 회사를 다니기로 결정했다. 하이마트 측은 “압박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박태환 인턴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