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경색 환자 살리려면 해외치료법 벗어나자”

입력 2018-12-16 21:03
전남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정명호 교수는 3000명의 심근경색 환자를 대상으로 등록사업을 시작했고, 40개 의료기관으로 확대해 약 7만명의 정보를 등록·관리하고 있다.

해외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약이나 치료법이라면 안전할까. 더 강한 약효를 가지고 있다는 해외 임상결과가 나왔다면 바로 적용해도 될까. 서양인들에게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면 안심하고 사용해도 되는 걸까.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하며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부는 미국 FDA 등 해외 기관의 승인과 유수 학회 등에서 발표하는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국내의 승인이 한 발 늦다고 타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위험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많이 쓰이는 약물이나 치료법이라도 한국인에게 안전한 것은 아니며, 서양인에게 나타나지 않는 부작용이 동양인에게는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론 인종 간 차이로 인해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종간의 차이를 반영하기 위한 여러 장치나 절차,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들에 따르면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치료법이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에 쓰이는 경우에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거나 이를 복제한 경우가 많은데다 선진국에서 만든 제품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여 이를 사용하는데 조심해야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심근경색증’이다.

심근경색증은 우리나라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이며 단일질환으로는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병이다. 더구나 사망률 1위인 ‘암’과 달리 발병과 함께 생명이 경각을 달리며 치료를 위한 준비시간이 부족해 때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치료재료나 치료제, 치료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유럽 등지에서 모두 건너온 것뿐이다.

이에 국내 심장내과 전문의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한 해에 최소 3~4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국가단위 급성심근경색 환자등록사업(KAMIR, The Korea Acute Myocardial Infarction Registry)을 2005년부터 시작했다. 시작은 전남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정명호 교수였다. 그는 30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등록사업을 시작했고, 대한심장학회 50주년 연구사업에 선정된 후 40개 의료기관으로 확대해 약 7만명의 정보를 등록·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환자들은 서양인에 비해 콜레스테롤과 고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HDL) 낮고, 중성지방이 높은 양상을 보인다. 고혈압과 당뇨를 함께 앓고 있는 심근경색 환자들 또한 더 많다. 일련의 인종 간 차이 때문인지 최근 약효가 강한 항혈소판제(Prasugrel)에 대한 반응도 서양인과 한국인 간에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해외 심장학회 지침에 따라 치료용량을 사용할 경우 임상적인 효과에서 큰 차이는 나지 않지만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가 크게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스텐트 시술의 경우도 해외 지침은 심부전 발생 시 즉각 시술을 하라고 권하고 있지만, 국내는 약물치료로 상태를 안정시킨 후 시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사됐다.

이와 관련 정 교수는 “KAMIR 연구결과 최근 개발된 항혈소판제의 경우 약효가 너무 강해 출혈이 발생하고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왔다”며 “인종 간 차이를 감안해 용량을 반으로 줄이고, 고위험군에 한해 선택적으로 사용하자고 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부전 치료에 대해서도 “고령이거나 심장 혹은 신장기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는 빨리 수술하는 것이 결과가 더 안 좋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 경우 심혈관질환 예방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스타틴(statin)’ 계열약물의 부작용인 당뇨발생률도 인종 간 차이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스타틴의 심장사건 발생률과 혈당에 대한 안전성을 연구한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김기식 교수는 “피타바스타틴이 여타 스타틴계 약물보다 주요 심장사건 발생률을 낮추고 혈당을 개선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구로병원 순환기내과 나승운 교수가 참여한 스타틴 계열 약물에 따른 당뇨병 발생을 비교한 연구에서도 피타바스타틴이 아토르바스타틴, 로슈바스타틴 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발생률을 낮춘다고 보고 됐다. 이에 정 교수는 “약물이나 심장수술 반응이 서양과 차이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중국과 일본도 최근 우리를 본 받아 등록사업을 시작했고, 한국 KAMIR가 중심이 돼 ‘동양인 심근경색 치료지침’을 준비하고 있다. 2020년 일본과 동시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명호 교수는 국가 차원의 환자등록사업을 이어나가고 발전시키기 위해 올해로 끝난 정부 지원이 지속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한국인의 체질을 밝히고 치료방법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한국인에게 적합한 제품을 개발하는 등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국가차원의 심혈관질환 종합관리대책과 정책방향을 정하고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 전라남도 장성에 ‘국립심뇌혈관센터’를 건립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