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 어느 날이었다. 만족스런 소리가 나 마음껏 노래한 뒤 자다가 오전 5시쯤 일어났는데 숨이 깊게 쉬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아내를 깨워 911을 부르도록 했다. 갑자기 오른쪽 눈이 뒤집어져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뇌졸중 증세였다. 911 구조대가 오자마자 산소 호흡기를 달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미국 와서 꿈을 펼치려 했는데… 내가 서른아홉에 죽는구나.’
앰뷸런스에 누워 병원에 가는 동안 뇌출혈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그간의 찬양사역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니 다행히 뇌혈관은 터지지 않았다고 했다. ‘일시적 뇌출혈 증상(TIA)’인데 잠시 뇌에 산소 공급이 안 돼 시신경을 다친 것이라 했다.
마침 내가 병원으로 이동할 때 한국에서 처남이 안부 전화를 했다가 이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한국은 그날이 주일이었다. 온누리교회에 다니던 처남은 ‘박종호가 위독하다’며 교회에 중보기도를 요청했고 성도들은 나의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줬다. 이때 성도들의 기도로 지금껏 이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쾌유를 위해 기도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이 일을 계기로 내 삶과 사역을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지난 14년간 하나님 일 한다고 껄떡대고 다녔다. 죽음 문턱까지 다녀오니 모든 게 다 하나님 은혜였다.’
이때 얻은 깨달음으로 만들어진 곡이 바로 10집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에 삽입돼 널리 알려진 찬양곡 ‘하나님의 은혜’다. 이 곡과 10집에 같이 들어간 또 다른 대표곡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도 이즈음 만들어졌다. 예수전도단에서 만난 30년 지기 찬양사역자 고형원 선교사가 곡을 썼다.
당시 고형원은 캐나다에 있어 팩스로 곡을 받았는데 멜로디 자체는 매우 단순했다. 하지만 가사가 범상치 않았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태초의 하나님이 수면 위에 가득 임했듯 하나님의 영이 예배자에게 가득 임하는 게 보고 싶다는 게 고형원의 바람이었다. 이에 감동을 받은 나는 이 곡을 앨범 타이틀로 정했다.
유학 전 발매한 9집 ‘새벽날개’ 수록곡 ‘물이 바다 덮음 같이’도 고형원의 곡이다. 이 곡 역시 멜로디는 평범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이란 가사를 보니 가슴이 터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곡을 듣고 부르는 모든 이들도 내가 느꼈던 마음에 공감할 것이라 믿는다.
그해 5월 다시 입시를 준비해서 원래 가고자 했던 학교와 과정에 입학해 성악 공부를 이어나갔다. 강의를 들은 지 2~3주가 지나니 벌써 소리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수업을 듣다 돌아보니 대학 동창의 제자뻘 되는 학생 여럿이 강의를 듣고 있었다. 동기들이 교수가 됐을 나이에 시작한 뒤늦은 유학생활이었지만 좋은 환경에서 다시 배울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