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 비정규직 사망… ‘죽음의 외주화’ 멈춰야

입력 2018-12-12 23:06
11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근로자 김용균(24)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사고를 두고 ‘죽음의 외주화가 또다시 발생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등 2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고(故)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2일 충남 태안군 서부발전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컨베이어 벨트가 아닌 하청업체로 떠넘긴 위험의 외주화가 김씨를 죽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지난 8월 태안화력 관리자가 하청노동자에게 안전작업 허가서 없이 업무를 재촉한 사실이 폭로됐다”며 “힘들고 위험한 업무는 외주화하고, 비용 절감만을 외쳤던 발전소가 결국 하청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질타했다. 이어 “서부발전은 김씨가 실수 때문에 사망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지만, 컨베이어 벨트 아래 떨어진 석탄을 제거하라는 지시가 없었다면 김씨 혼자서 작업하다 변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특히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이번 사태를 만들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김씨는 2개월 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구했지만 대통령을 만나기 전 세상을 떠났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에 대한 약속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바뀌어도 청년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기자회견 자리에 함께한 김씨의 어머니는 “이런 사고는 부모로서 당해야 할 일이 아니다. 아들이 겪은 것과 같은 사고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대통령이 약속하지 않았나. 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 조사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씨의 빈소가 차려진 충남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는 오전부터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날 야근을 하고 퇴근한 직장 동료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정치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앞서 김씨는 11일 오전 3시20분쯤 태안군 원북면에 위치한 태안화력 9, 10호기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서부발전의 협력업체인 한국발전기술 비정규직 근로자인 김씨는 전날 오후 6시쯤 출근해 컨베이어를 점검하고 오후 10시 이후부터 연락이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석탄 컨베이어벨트의 정상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연료 설비운전 파트’ 소속이었던 김씨는 당시 규정과 달리 2인 1조가 아닌 혼자서 근무를 나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발전소의 한 간부는 직원들에게 ‘사고 발생 지점이 자주 순찰을 하지 않는 곳이라고 말해 달라’고 하거나 외부에 대응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등 직원들의 입막음을 시도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고를 조사 중인 태안경찰서는 현장 목격자 등 김씨의 동료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마친 상태다. 경찰은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의 관리책임 여부도 조사할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도 이날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 대해 특별감독에 착수했다.

태안=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