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주저앉는 지역경제
② 번지는 불황의 불길
③ ‘무용지물’ 구조조정
④ 위기 극복의 길
⑤ 변신을 두려워 말라
정부의 구조조정은 늘 뒷북을 쳤다. 조선산업이 그랬다. 조선산업은 2008년에 연간 432억 달러를 수출하며 자동차, 반도체를 제치고 국내 수출 1위에 오른 ‘효자’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고유가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바다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해양플랜트 사업에 집중한 전략이 빛을 발하는 듯했다. 하지만 봄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1년 63조5845억원이었던 생산액은 2012년 59조7740억원, 2013년에는 54조5941억원으로 추락했다.
급기야 2014년 ‘조선 빅3’(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에서 3조6315억원에 이르는 영업적자가 발생하면서 위기감이 증폭됐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2015년 빅3의 영업적자는 5조1665억원까지 늘었다. 황금알 낳는 거위인 줄 알았던 해양플랜트 사업은 ‘블랙홀’로 돌변했다.
정부는 2016년 6월에서야 뒤늦게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정부는 제1차 산업경쟁력 강화 장관회의를 열고 빅3가 10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책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6년 8월에 발간한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고용 대책’ 보고서에는 당시 상황이 한 줄로 요약돼 있다. “조선업은 막대한 부실, 적자 확대, 수주 가뭄, 국책은행의 엄청난 자금지원, 대규모 구조조정 등으로 한국 경제의 큰 걱정거리가 됐다.”
빅3의 부진은 중소조선사 경영난, 지역경제 불황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당장 고용부터 줄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조선산업을 포함한 ‘기타운송장비’ 분야 일자리는 계속 감소세다. 지난달에도 7800명이 줄었다. 울산, 경남 거제·통영 등을 중심으로 일자리 실종이 이어지면서 지역경제도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선제적 구조조정의 실패가 지역경제의 ‘도미노 불황’을 부른 것이다.
자동차산업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1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출하액은 193조1490억원으로 전년(196조6340억원) 대비 1.8% 감소했다. 자동차업계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을 보면 위기는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동차 수출액은 올해 1월 잠시 반등하더니 6개월 연속 내리막을 걸었다. 이후 등락을 반복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하향세다.
자동차산업이 조선산업처럼 대형 회사 의존도가 높고, 협력업체 수가 많다는 점도 위기감을 더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858곳의 중견·중소 자동차 부품업체 가운데 680곳(79.9%)이 현대·기아차에 기대고 있다. 매출액 의존도도 엇비슷하다. 자동차 부품업계의 총 납품액(47조2985억원) 중 현대·기아차 비중은 80.5%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특정 대기업 의존도를 낮추거나 다른 분야에 진출하는 식의 체질 개선이 가능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수조원을 쏟아부었던 식의 ‘땜질 처방’은 해법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그래야만 특정 제조업에서 출발한 위기가 지역경제의 불황 또는 지역경제의 붕괴로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한온시스템, 대원광업 등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도 의존도를 낮추고 체질을 전환하려는 기업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자동차업계에선 중소기업이 스스로 체질을 바꾸고, 대기업 의존도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정부가 나서서 멍석을 깔아줘야만 한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안에 자동차 부품업계를 대상으로 하는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 안에 구조조정 방안이 포함될지는 미지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듣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포함해 정부 정책을 수정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신준섭 전성필 기자 sman321@kmib.co.kr
정부도 기업도 위기 닥쳐야 허둥지둥, ‘응급수혈’로 연명 급급
입력 2018-12-13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