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총 대신 카메라 들고 남한으로 내려온 북한군 77명

입력 2018-12-12 19:07 수정 2018-12-12 22:10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 철수된 남북의 감시초소(GP)를 연결하는 오솔길에서 12일 남북 군 검증반이 만나 인사하고 있다. 이들은 소총 대신 검증 장비를 들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상대방 GP의 파괴 여부를 검증했다. 북측 책임자 리종수 육군 상좌는 남측 윤명식 육군 대령을 만나 “이 오솔길이 앞으로 대통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철원=사진공동취재단

북한군 7명씩으로 꾸려진 11개 검증반이 12일 오후 2시쯤 일제히 대열을 이뤄 최전방 서부·중부·동부전선의 군사분계선(MDL) 근처로 내려왔다. 비무장지대(DMZ)를 남북으로 가르는 MDL에서 대기하고 있던 국군이 북한군과 악수를 나눈 뒤 남측으로 안내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남북 군이 소총 대신 카메라와 검증 장비를 들고 대규모로 MDL을 넘은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다.

남북 군 당국은 이날 9·19 군사합의에 따라 시범적으로 파괴·철수한 DMZ 내 감시초소(GP) 22개에 대한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상대방 GP의 파괴와 화기 철수 여부를 서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시범철수 GP 검증을 마무리한 남북은 앞으로 DMZ 내 모든 GP(남측 60여개, 북측 160여개)를 철수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북측 GP의 지하갱도가 완전히 매몰된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검증 결과를 정밀 분석 중인데 만약 미흡한 점이 발견된다면 이달 말까지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 군은 오전 9시부터 낮 12시10여분까지, 북측은 오후 2시부터 4시50여분까지 검증을 진행했다. 남북 검증반과 양측 안내요원이 처음 만난 지점에는 가로 3m, 세로 2m 크기의 황색 깃발과 MDL 지점을 표시하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남북 검증반은 계단 형태의 오솔길을 따라 이동했다. 이 오솔길은 앞서 남북 군 당국이 만든, 남북의 시범철수 GP 각 11곳을 연결하는 폭 1~2m의 비포장 통로다.

남북 검증반은 공병 등 5명과 촬영요원 2명을 포함해 7명이 한 조로 구성됐다. 총 22개조, 154명은 비무장 상태로 투입됐다. 이들과 별도로 무장한 남북 군인들이 각각 경호 임무를 수행했다. 이날 검증한 GP는 남북이 파괴한 20개와 보존키로 한 2개다. 1개씩 남기기로 한 GP에 대해선 화기 철수 여부를 확인했다. 우리 군은 북측 GP에 구축돼 있던 지하갱도를 파괴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레이저거리측정기와 원격카메라를 동원했다.

북한군은 우리 검증반을 따라붙으며 일일이 카메라에 담았지만 검증 장비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적극 협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우리 검증반이 북쪽 GP를 검증하면서 남북이 서로 담배를 권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환담의 시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후 3시부터 20분간 ‘청와대 벙커’인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북한군의 현장 검증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문 대통령은 “이번 상호 검증은 그 자체만으로도 남북의 65년 분단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사건”이라며 “오늘의 오솔길이 또 평화의 길이 되고, DMZ가 평화의 땅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북측이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성의껏 검증 준비를 했다”고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