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 15층 빌딩 기우뚱… 끝나지 않은 ‘삼풍 악몽’

입력 2018-12-12 19:23 수정 2018-12-13 14:16
서울시가 12일 붕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오피스텔 입주자들을 퇴거 조치한 강남구 삼성동 대종빌딩의 2층 기둥을 감싼 콘크리트가 부서져 철골 구조물이 드러나 있다. 최현규 기자
준공된 지 27년 된 대종빌딩의 외관. 최현규 기자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15층 건물이 ‘붕괴 위험’ 진단을 받으면서 입주민과 주민들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강남구는 지난 3월 해당 건물에 대해 안전점검을 진행했지만 겉으로 훑어보는 육안 점검에 그쳐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긴급 조사에서는 부실공사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민의 일상과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안전 문제가 잇달아 터지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는 12일 삼성동 대종빌딩을 제3종 시설물로 지정하고 이날 밤 12시를 기점으로 사용금지를 통보했다. 3종 시설물로 지정되면 구가 입주자의 시설물 사용을 제한하고 퇴거 조치할 수 있다. 우선 입주자들이 건물을 비우면 건물주와 협의해 정밀안전진단을 벌일 계획이다.

박중섭 강남구 건축과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부실시공 여부는 안전진단 결과를 가지고 종합적으로 살펴봐야겠지만 (현재) 육안으로 보면 잘못된 시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 과장은 “전문가에 의하면 (대종빌딩이 시공된) 1991년도는 시멘트 파동 등 건축업계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여서 기둥 자체가 (처음부터) 80% 성능으로 지어졌다”며 “80% 내력으로 버티다가 지금은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설계 도면과 다른 시공도 발견됐다. 박 과장은 “도면을 보면 2층 가운데 두 개 기둥이 사각형으로 돼 있는데 시공 자체는 원형으로 됐다. (이 때문에) 내력 자체가 20% 부족해진 게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며 “철근과 시멘트 조합 상태나 철근 이음 상태 역시 부실하게 시공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대종빌딩은 지하 7층, 지상 15층 규모에 연면적이 1만4000㎡에 이른다. 15층 이하 소규모 시설물에 해당해 그동안 안전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2년마다 자체적으로 전문가에게 의뢰한 유지관리 보고서를 제출해 왔다. 지난 3월에는 강남구가 육안으로 점검을 벌였지만 이상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박 과장은 “3월 구 점검에선 안전등급이 B등급으로 결론 났다”며 “육안으로 외부를 봤을 때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기둥 균열이 하루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은 아닐 거라고 입을 모았다. 김순환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윤리위원장은 “상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철근이 노출된 상태로 준공했다면 문제고, 나중에 떨어져 나왔다 해도 문제다. 정기점검을 받았다면 이전에 분명 언급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근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도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진행됐을 리는 없다”며 “설계가 잘못됐거나, 시공이 잘못됐거나, 설계 당시 고려된 것보다 더 큰 하중이 실렸거나 3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다. 철근의 연결 부위, 기둥 크기, 콘크리트 품질 등을 조사하면 대략적인 원인은 금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붕괴 위험 소식에 입주민들은 불안과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일부는 급하게 쇼핑백과 쓰레기봉투에 사무실 자재를 담아 밖으로 옮겼고, 복사기나 의자 등을 빼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구청의 일방적인 통보에 분노를 표하는 거주자도 있었다. 15층에 입주한 한 남성은 “건물이 무너지더라도 제대로 된 조치 없이는 (건물을) 못 막는다. 내겐 생계가 걸린 일이다. 용납할 수 없다”고 분개했다. 12일 오후에 진행된 대종빌딩 입주민 비공개 회의에서도 고성이 오갔다. 박 과장은 “현행법상 민간 건물이라 입주자에 대한 보상 조항은 없다”며 “세입자 및 관계자들을 위해 최대한 지원하고 중재하겠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이번 주 내로 지하 1층부터 지하 4층까지 각 층에 20개씩 지지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정밀안전진단에는 2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박상은 조효석 김남중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