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호 (11) 더 멋진 목소리로 찬양 위해 美로 유학 떠나

입력 2018-12-13 00:06 수정 2018-12-13 09:51
박종호 장로가 2010년 서울 종로구 상명대 상명아트센터에서 열린 ‘박종호 뮤지컬 콘서트’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미국 하와이에서 5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전국의 읍면 단위에 있는 교회를 찾아다녔다. 해당 교회에서 요청이 온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강원도 인제 양구 속초 태백 강릉 등 평소에 쉽게 갈 수 없는 지역의 교회에 일일이 연락해서 찾아가 찬양집회를 열었다. 대형콘서트에서 사용하던 스피커를 싣고 굽이굽이 시골 교회로 찾아가면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한자리에 모여 나를 반겨줬다. 신앙 간증과 찬양이 어우러진 집회를 끝내면 성도들이 치커리 미역 식혜 등 토산품을 사례로 챙겨줬다. 대형공연장에서 하는 콘서트와는 다른 감동이 느껴졌다.

남들은 웬 생고생이냐고 생각할지 몰라도 내게 시골교회에서의 찬양집회는 오히려 ‘위로의 시간’이었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의 한 성결교회로 찾아갔을 때의 이야기다. 찬양집회를 마치자 장로인 어르신이 한 집사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모처럼 서울에서 이름이 알려진 손님이 왔다고 명태국을 대접한다고 했다. 그날 오후 11시쯤부터 온 성도가 그곳에 모여 명태국을 먹었다. 그때만큼은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한 식구(食口)였다. 먼 길 오느라 지친 몸과 마음이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대형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하면서도 시간 날 때마다 전국 70여곳의 시골 교회로 찬양집회를 다녔다. 찬양을 들으며 행복해 하는 시골 교회 성도를 보며 내 마음 역시 행복으로 차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에 힘입어 1997년 8집 ‘지명’을 발표하고 전국 12개 도시로 콘서트 투어를 했다. 8집 전국 콘서트 때는 댄스팀을 동원해 공연을 꾸몄다.

나는 공연과 집회는 성격이 확연히, 아니 아예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가 모여 예배하는 장소지 공연 무대가 아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집회를 할 때는 내가 어떻게 예수를 만났는지를 간증한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그야말로 제대로 갖춰지고 연출된 ‘쇼’를 하려고 한다. 콘서트는 돈을 내고 즐기기 위해 오는 것이다. 그러기에 집회와 달리 설교나 간증을 하지 않는다. 대신 연주와 조명 등을 세심히 연출해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공연도 결국은 하나님을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8집 전국 콘서트 역시 대형공연장 위주로 준비했다. 지난 앨범 때처럼 모두 자비로 빚을 져 공연 준비를 하다 보니 예상보다 관객 수가 적으면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순천 광주 등 5개 도시를 끝내고 나니 거의 1억원의 손해가 났다. 다행히 나머지 8개 도시에서는 적지 않은 관객이 동원돼 콘서트를 연 이래 처음으로 빚을 만회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앨범과 콘서트를 준비하며 바쁘게 지냈지만 마음 한편에는 성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늘 있었다. 더 유명한 성가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 소리의 정점이 어딘지 보고 싶어서였다. 발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내가 내고 싶은 소리를 멋있게 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었다. 찬양사역을 시작한 지 11년이 지난 99년 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고별 콘서트’를 열었다. “더 멋진 목소리로 80세까지 찬양하겠습니다.” 고별 콘서트에서 내가 관객에게 한 약속이다. 공연을 마무리한 후 나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기대하며 온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