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가 중국 뤼디그룹이 추진해온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허가했다. 녹지병원이 완공된 지 1년5개월 만이다. 법적 하자가 없는 허가를 이처럼 긴 기간 미룬 것은 행정 횡포나 다름없다. 늦었지만, 많은 표를 잃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결단을 내린 점은 칭찬해야 한다. 원 지사의 선택이 비록 지금은 다소 비판을 받더라도 결국 올바르게 평가되리라 확신한다.
녹지병원은 의료 차원에서 제주도민에게 별 이익도 없고 악영향을 끼칠 것도 아니어서 그리 문제 삼을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세워지는 병원이어서 제주도민이 이용할만한 장점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 병원으로서는 필자가 보기에 서귀의료원과도 경쟁상대가 되지 못 한다. 개설된 과부터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정하였기 때문에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주축으로 하고 건강검진 환자를 보기 위한 내과와 가정의학과 정도가 있을 뿐이다. 내국인이라면 일반 환자는 물론이고 건강검진을 받으려는 이들조차 영상의학과도 없는 병원에 가려고 하겠는가.
이런 병원을 공공자금 쓰는 것도 아니고 외국 자본이 짓는데 왜 이리 시끄러운지 의문이다. 필자는 시민단체 등에서 잘못된 전제로 반대를 부추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대하는 단체들은 영리병원이란 이름을 들어 병원이 영리를 추구하면 되느냐고 주장한다. 이것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작명(作名)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저 비영리병원이 아니란 이유로 병원이 영리를 추구하면 되느냐는 비난에 휩싸이게 되었다. 제주특별법이 규정하고 있는 이 병원의 정확한 명칭은 영리병원이 아니라 투자개방형 병원이다. 덧붙여, 우리나라 병원치고 영리를 생각하지 않는 병원이 어디 있는가? 도립의료원들마저 적자가 많다고 도의회에서 매해 지적을 받고 있는데 병원들로서는 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병원조차 수익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병원은 수익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반대단체들은 병원이 떼돈을 벌고 있어서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병원이 생기면 너도나도 그런 병원을 개설하려 해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도 편다. 이것은 지금 의료계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국내 의료기관의 85% 정도는 사립의료기관이다. 이런 곳에서는 지금도 이익이 생기면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다. 나머지 15%에 해당하는 의료법인 병원이나 공공의료기관에서만 수익이 생겼을 경우 병원에 재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즉 현재도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85%가 영리병원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의사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병원들이 떼돈을 벌고 있다는 인식도 잘못된 것이다. 의사들의 연봉이 높기 때문에 일반인들로서는 당연히 병원도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수가는 국가에서 정하므로 병원 수입은 한정되어 있는데 봉직의사들의 봉급이 많아지면 병원의 수익성은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프로 야구선수들이 연봉을 많이 받지만 구단은 적자인 우리나라 야구단과 비슷하다. 국내 병원 중에는 영리병원이나 마찬가지인 일반병원 형태로 운영하다 의료법인으로 바꾼 사례가 여럿 있다. 영리병원이 떼돈을 벌면 그냥 영리병원 형태인 일반병원으로 할 텐데 왜 증여세까지 내면서 의료법인으로 바꿀까? 뒤집어 말하면 의료법인 병원이 영리병원으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물론 현재의 법체계로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영리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 의료체계가 무너지리란 것은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기우에 불과하다.
설령 내국인에 의해 영리병원이 세워진다 해도 우리나라는 전 의료기관이 강제적으로 의료보험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어 의료비는 비영리병원과 다를 바가 없다. 의료보험에 해당되지 않는 의료행위도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다만 의료행위 이외의 서비스를 달리하면서 그에 따른 요금을 징수할 수는 있을 것이다.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반대하는 단체에서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건강보험법이 비민주적이어서 민주화가 진전되면 개정되지 않을까, 그래서 영리병원이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사실 이 법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으면 하면서도 비민주성 때문에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영리병원이 생겨나면 이 법도 결국 고쳐질 거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참 모르는 주장이다. 여러 해 전에 의사협회에서 이 법의 비민주성을 들어 위헌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때 헌법재판관들도 비민주성을 인정하였지만 국민의 혼란을 우려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렇다. 이 법은 만드는 것보다 고치기가 더 어려운 법률이다. 법관들도 위헌 판결을 내릴 수 없는 법을,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이 고칠 수 있을까? 국회통과에 필요한 과반수는 고사하고 법 개정 발의에 필요한 20명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단체들은 미국의 의료체계를 고발한 영화 ‘식코’와 같은 사태가 영리병원 때문에 생겼다고 말한다. 이는 영리병원 반대론 중에서 가장 잘 먹혀들어가는 것이다. ‘식코’와 같은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생긴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며, 필자가 앞장서서 막을 것이다. 미국에서 영리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시민단체 주장에 의하면 13%다. 이 13% 때문에 그런 끔직한 현상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그러면 미국보다 투자개방형 병원이 더 많은 유럽 여러 나라나 호주에서는 왜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지 않는가? 특히 네덜란드는 공립병원은 없고 투자개방형 병원이 72%나 된다고 하는데 왜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지 않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은 영리병원 때문이 아니고 미국의 사법제도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미국에는 다른 나라보다 변호사 숫자가 2배 가까이 되므로 이 사람들이 밥벌이를 하려면 소송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의료소송이 늘어나니 의료기관이 부담하는 소송비용이 증가하고, 이 비용을 지불하는 보험회사의 보험금이 증가하게 되니 보험회사의 보험지급률이 높아지며, 따라서 보험회사에서 요구하는 의사들과 병원의 배상보험료가 올라가게 되고, 병원 지출이 많아지니 의료수가가 자율인 미국에서는 병원들이 의료수가를 올리고(미국의 의료수가는 우리나라의 약 10배에 달함), 의료수가가 높아지면 당연히 의료보험료도 올라가니,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 비싼 의료보험료를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어렵게 되어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만일 돈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세우는 게 꺼림칙하다면 의료인들이 힘을 합쳐 주식회사형 병원을 세우도록 하면 어떨까? 그리 되면 중소도시에서도 준종합병원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개인의원을 하다가 병원을 짓고 종합병원으로 발전하였으며 개중에는 대학병원이 된 곳도 있지만, 지금은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사람이 종합병원을 짓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녹지병원 개원을 불허했을 경우 제주도민이 입게 될 손해가 막심하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아마 이번 결정에 따른 후폭풍이 있겠지만 제주도는 담대하게 처신하기를 바란다.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시론-이유근] 투자개방형 병원에 대한 5가지 오해
입력 2018-12-13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