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에게 명품 가방·현금… ‘강남 재건축’ 위한 건설사들의 로비 백태

입력 2018-12-11 19:29
지난 8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 모습. 뉴시스

대형 건설사들이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대규모 로비를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홍보대행업체를 내세워 조합원들에게 현금을 뿌리거나 명품 가방을 건네는 등 수십억원을 로비에 투입했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투표권을 가진 조합원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 등)로 현대·롯데·대우건설과 이곳 임직원 22명, 홍보대행업체 직원 293명을 불구속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건설 3사는 지난해 9~10월 서울 반포와 잠실 지역의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조합원에게 모두 42억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거나 제공하려고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업비 10조원 규모의 반포주공 1단지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건설은 로비에 28억원을 투입했다. 홍보 감시 역할을 하는 조합총회 대행업체 대표에게 5억5000만원을 건넸고 조합원에게는 현금과 명품 가방을 제공했다. 사내 단톡방에는 ‘과일을 살 때는 반드시 조합 대의원의 과일가게를 이용하라’는 공지를 올렸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신반포 15차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조합원들에게 “제안서가 저장돼 있으니 열어 보라”며 태블릿 PC를 건넨 후 돌려받지 않았다. 또 계열사 고급호텔에서 조합원 대상 좌담회를 연 뒤 이곳에서 숙박할 수 있도록 했다. 롯데건설은 로비에 12억원을 투입했다.

신반포 15차 시공권을 따낸 대우건설은 2억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조합원에게 건넸거나 건네려고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발장에 만년필을 두고 오거나 경비실에 선물을 맡기는 식이었다.

경찰은 금품을 받은 조합총회 대행업체 대표 등 10명과 조합원 9명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조합원의 경우 금품을 수차례 받은 이들만 입건됐다. 경찰은 “불법자금이 모두 사업비인 홍보용역비로 책정돼 그 부담이 결국 집값 상승으로 연결되는 구조”라며 “다른 건설사도 추가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