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군산 흔들리자 경주·익산도 휘청

입력 2018-12-12 04:00

지난 5일 경북 경주시 외동읍 S사 공장은 절반만 분주했다. 차량용 부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80명이던 직원을 올해 40명까지 줄였다. 줄어든 직원 수만큼 공장 가동률도 떨어졌다. 직원들은 작업대 앞에서 바삐 움직였지만 군데군데 빈 작업대는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대표 A씨(60)는 “지난해부터 현대·기아차 일감이 40% 정도 감소했다. 180억원이던 연간 매출액은 120억원까지 내려앉았다. 지난해 겨우 적자는 면했는데, 올해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주는 최근 경기 둔화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지역 중 하나다. 경주 지역경제의 ‘젖줄’인 울산 제조업 경기가 흔들리자 심각한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경주 외동산업단지에는 1100여개 업체가 들어서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울산에 있던 중견·중소기업들이 하나둘 넘어오면서 거대한 단지를 형성했다. 대부분 조선·자동차 관련 협력업체다.

A씨처럼 공장을 돌릴 수만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11일 외동 공장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11월까지 약 300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 일감이 줄면서 납품단가는 떨어지는데, 인건비가 급격히 올라 수지를 맞출 수 없게 된 것이다. 시설투자는 엄두도 못 낸다. A씨는 “새로 기계를 들여놓을 수 없다보니 경주에서 기계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먼저 부도나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경주의 다른 공단도 비슷한 상황이다. 건천읍의 한 산업단지에서 차량용 차음재를 생산하는 H업체 대표 B씨(52·여)는 “여기 공단에 22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데, 최근 5곳이 문을 닫았다. 공장을 통째로 임대 내놓는 곳도 많은데, 아무도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자동차·조선 등 주력 제조업 추락의 여파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특정 산업과 연결된 인근 지역의 협력업체들이 더 빠르게 타격을 받는다. 고용·산업 위기 상황이 지역 간 경계를 넘어 확산되면서 한국판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장지대)도 점점 덩치를 키우고 있다.

울산이 기침만 해도 감기에 걸리는 경주 지역경제의 현실은 지표로도 드러난다. 경주의 올해 상반기 취업자는 14만19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다. 제조업 침체에 따른 서비스업, 건설업 연쇄 붕괴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도소매·숙박음식점업 취업자는 7.0%, 건설업 취업자는 21.8% 줄었다.

비단 경주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주력 제조업이 흔들리면 인근 협력업체 지역이 먼저 위기에 빠지는 현상이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다. 전북 익산은 인근에 있는 군산의 한국GM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심각한 동반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익산의 올해 상반기 취업자 수는 13만5900명으로 지난해보다 5.3% 줄었다.

그러나 협력업체가 ‘등뼈’를 이루는 지역들이 당장 변화를 꾀하기도 쉽지 않다. A씨는 “협력업체들은 원청 대기업에 맞춰 설비 등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판로를 다각화하라는 얘기는 협력업체들 입장에선 지금 있는 기계를 싹 버리고 공장을 다시 만들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협력업체 지역이 ‘사각지대’가 되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울산 동구와 전북 군산, 경남 거제 등을 고용·산업 위기지역으로 지정했지만 경주와 익산 등 인근 협력업체 지역은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경주=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