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호 (10) 음향장비 들고 전국 동네 교회 순례 ‘사역 2기’ 시작

입력 2018-12-12 00:01 수정 2018-12-12 09:55
박종호 장로 부부가 1997년 국제예수전도단의 미국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에서 제자훈련을 받을 당시 모습.

1993년 숭의음악당 콘서트에서 믿지 않는 이들이 기독교에 관심을 갖는 걸 본 후로는 대형 공연에 무게를 두고 사역을 펼쳤다. 대중가요 콘서트보다 재밌는 공연을 기획해 예수를 모르거나 교회를 떠난 청년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교회 집회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공연장을 찾는 기독 청년들은 점점 늘었지만 교회엔 여전히 제약이 많았다. 지극히 성경적인 내용을 담은 포스터라도 십자가나 기독교 등 직접적인 표현이 없으면 교회에 붙이지 못하게 했다. 수준 있는 연주를 선보이고자 빚을 내 고가의 음향기기를 가져가고 실력 있는 반주자와 동행해도 사례는 여전히 박했다. 이윽고 ‘교회에 갈 때마다 상처를 받느니 공연에 집중해 건전하고 수준 있는 기독교 문화를 이끌어 가자’고 다짐했다.

그랬더니 “박종호 집회는 비싸다” “건방지다”라며 비난하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하지만 정작 이런 소리를 내는 교회들은 연락한 적도 없던 곳이 대부분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등 주로 대형공연장에서 대중가수 이상으로 화려한 공연을 했으니 교회에 초청하려면 거금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건방지다’는 평가는 꽤나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저 대중음악보다 더 멋지게 하나님을 전하고자 빚까지 져가며 최선을 다해 공연을 마련했을 뿐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에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비방하기까지 했다. 대중가요 가수에 비해 성가가수를 제대로 대해주지 않는 교회의 행태도 변함이 없었다.

이런 현실의 벽을 체감하니 더 이상 성가가수를 할 자신이 없어졌다. 아예 찬양사역을 그만둬도 좋다는 생각으로 이탈리아와 미국 유학길을 알아봤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 필요한 건 배움이 아니라 쉼이고 영적 재충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97년 가족과 함께 국제예수전도단의 미국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으로 제자훈련을 받으러 떠났다.

하와이에서의 3개월 훈련과 필리핀과 홍콩에서의 2개월 전도여행을 마칠 무렵이었다. 훈련을 끝내기 전 한 미국 목회자 부부가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기도 중 미국인 사모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종호는 마치 큰 호숫가를 서성이며 어떻게 호수를 건널지 고민하는 사람 같다. 하지만 걱정 마라. 당신이 가고자 하는 그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다.”



나는 이를 듣자마자 아내와 펑펑 울었다. 당시는 찬양사역을 더 해야 할지, 아니면 이탈리아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이들 부부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파악하고 이야기를 해 준 것이었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다시금 국내에서 진행할 찬양사역에 대해 생각했다. 문득 서울이 아닌 내 나라 구석구석 찬양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종호의 성가곡은 알지만 박종호를 직접 본 적은 없는 곳. 군이나 읍 단위의 작은 동네 교회로 음향장비를 들고 찾아가 내가 만난 주님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박종호의 자아는 죽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역 2기’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