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입력 2018-12-12 00:03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에 대한 내용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이다.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시편 80편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져내신 포도나무에 비유했으며, 이사야 5장은 이스라엘을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이들은 들포도, 신포도 나무가 돼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생명을 이스라엘에 주시려 했는데 그것이 이스라엘에는 법과 올무가 돼 버렸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지금 마지막 성찬의 순간에 포도나무에 대해 다시금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은 무엇일까요. 이 본문은 매우 익숙한 만큼 대단히 핵심적인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예수님과 사람은 포도나무와 거기에 달린 가지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사역 초기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오라”고 하셨고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부르신 것, 따르라고 하신 것은 그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정의 내리는 단어가 바로 포도나무와 가지인 것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가 된 신자들이 예수님을 닮는 것을 목표로 산다면 결국 신자들은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거나 열매 맺는 일은 어떤 노력으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품을 뿐 아니라 의롭고 진실한 행동을 하려고 힘씁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회개하고 일어서서 다짐하고 결심한 뒤 살아갑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또 다시 실패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신자들에게 일어납니까. 그것은 신자들이 활동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느낄만한 활동들로 자신의 삶을 채워갑니다. 무언가 이룬 것처럼 느끼고 만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교제가 기초가 되지 않는 신앙생활은 모양은 갖추고 있을지 몰라도 ‘풍성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신자로 만들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잊고 자신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돼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의 생명력 있는 유기적 교제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홀히 하면 결국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을 향해서 경고했던 것처럼, 생명력 있는 포도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이시고 모든 신자는 가지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지켜보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다면 그 사실로 인해서 우리는 아버지인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진정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 바르고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확신하며, 나의 전적인 무능력함을 인정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공로를 의지한다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싹틀 것입니다.

한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 열매 맺을 것을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유일한 노력은 포도나무에 달라붙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지이지만 동시에 포도나무의 부분이 되어 그 생명을 풍성히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권성 서울 강서양문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