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대표 단식까지 부른 ‘연동형 비례대표’… 과연 정답일까

입력 2018-12-11 04:02
이해찬(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닷새째 단식농성 중인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찾아가 악수하고 있다. 이 대표는 즉각 단식을 중단하라고 했지만, 손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 협상이 끝나야 단식을 풀겠다고 했다. 윤성호 기자
바른미래당 손학규, 정의당 이정미 두 야당 대표가 단식농성까지 하며 외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선거제도 개혁의 정답일까.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기 위해 비례대표 수를 늘리면 민의(民意)는 더 정확하게 반영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각 정당이 선출해 온 비례대표 면면을 보면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역대 총선 때마다 거대 양당의 비례대표 후보자는 당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0일 “당 지도부가 ‘깜깜이’로 공천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나 당원에게 투표권을 줘서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정당이 스스로 고민해서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는 첫 번째 과제”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깜깜이 공천’은 그동안 여의도의 오랜 관행이었다. 실제로 2016년 4월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비례 2번을 받았던 김종인 전 의원은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지내면서 자신을 ‘셀프 공천’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노동이나 장애인, 청년, 다문화 등을 대표하는 후보는 당선 안정권에 들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들을 곳곳에 심었다. ‘입맛대로 공천’, ‘나눠먹기식 공천’이라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반복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상당수 비례대표는 이처럼 당 지도부의 자기사람 심기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19대 국회에서는 필리핀 출신의 결혼이주 여성인 이자스민 의원, 탈북자 출신인 조명철 의원 등이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았지만 20대 국회 비례대표는 이보다 개혁성이 후퇴했다.

지난달 21일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례대표의 증원이 적절한 처방이라고 전제하더라도 과연 이 비례대표를 어떻게 공천할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거의 바닥인 상황에서 과연 정당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유권자들은 정당이 준 리스트만 갖고 선출해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비례대표제 정착을 위해서는 투명한 공천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당 내부에서도 나온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은 “지역구에 편중된 현 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측면에서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리는 것은 중요하다”며 “비례대표를 늘린다는 건 정당 공천을 존중한다는 것인 만큼 공천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하다. 예비선거 수준으로 제도를 마련해 비례대표 공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찬성하지만 의원 정수 확대에는 반대하는 여론도 이 같은 정당 불신에 기반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42%가 ‘좋다’고 답했지만 의원 정수를 두고서는 57%가 세비 총액을 유지하더라도 늘려선 안 된다고 답했다.

‘비례대표가 비례대표답지 못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20대 국회에서도 직능과 전문성을 대표해 선출된 비례대표 의원들이 다음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를 선점하면서 반(半) 지역구 의원처럼 활동하고 있다. 예산안 정국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비례대표 의원들이 차기 총선에 출마할 지역구 예산 확보에 나서고 이를 유권자들에게 홍보하기도 했다. 비례대표의 본래 취지와 다른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