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는 부끄럽지도 않나

입력 2018-12-11 04:01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을 보면 ‘한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훌쩍 넘긴 것은 물론이고 밀실 심사·거래, 예산 나눠먹기 등 지탄받아온 과거 행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필요한 정책은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할 국회가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 급급했으니 후안무치가 따로 없다.

최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국민들은 시름이 깊다. 내년도 예산은 식어가는 경제 엔진을 되살리고 서민들의 고달픈 살림살이를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했다. 그런데 지난 8일 새벽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은 그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서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보건·복지·고용 예산이 정부 원안에 비해 1조2000억원 감액됐다. 기초연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생계급여가 깎이는 노인들에게 월 10만원을 더 주기 위해 책정한 ‘기초연금 개선’ 예산(4102억원)이 삭감됐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 일자리 예산도 뭉텅 잘려나갔다. 대신 시급성이 떨어지고 과잉·중복 투자 논란이 끊이지 않는 지역구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1조2000억원 늘었다. 상임위와 예결특위 심의 과정에서 논의되지 않았거나 논의 결과를 뒤집는 예산들이 무더기로 밀고 들어온 결과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 각당 지도부,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과 간사 등 실세 의원들의 민원성·쪽지 예산이 대거 반영된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70억원,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560억원 상당을 증액하며 막판 지역구 예산 챙기기 구태를 앞장서 보여줬다.

예산 심사를 차일피일 미루다 법적 근거도 없는 ‘소소위’를 통해 내년도 예산안에 최종 합의한 것도 문제다. 소소위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속기록을 남기지 않아 의원들 간에 어떤 거래가 이뤄졌는지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는 구조다. 입만 열면 ‘촛불’을 강조해 온 민주당이 밀실에서 예산을 나눠먹는 데 한통속이 됐다니 참담할 뿐이다.

국회는 그래놓고 내년도 의원 세비를 1.8% 인상했다. 민생법안 처리는 외면하면서 정쟁을 일삼아 온 국회가 버젓이 제 급여는 ‘셀프 인상’을 한 것이다.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후진적인 국회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예산 심사의 투명성을 높일 장치를 서둘러 마련하고, 세비 인상분은 속히 반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