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제조업 의존 4곳 성장 공식이 무너졌다

입력 2018-12-11 04:01

대형 제조업체가 선두에서 달리고, 그 과실을 협력업체, 서비스업체가 나누는 지역경제 성장 공식이 붕괴하고 있다. 올해 들어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20개 시·군 가운데 4곳의 ‘고용·생산·소비’가 역대 최악으로 동반 추락했다. 특히 심각한 침체로 접어드는 울산, 경남 거제, 부산, 전남 곡성은 자동차·조선산업과 깊게 연결돼 있다.

위기 지역에서 ‘일자리→생산→소비’라는 성장 고리는 끊어졌다. 지역경제가 무너지면서 한국판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장지대)가 등장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국민일보가 10일 광역시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군을 전수 조사한 결과 근로자의 10% 이상이 대형 제조업체(300인 이상)에 근무하고 있는 지역은 20곳으로 집계됐다. 울산, 경북 구미, 충남 아산, 전남 곡성, 경남 거제, 인천, 부산, 경남 창원 등이다. 이 중 울산, 거제, 부산, 곡성은 올해 상반기 제조업 취업자 수가 2013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였다. 울산은 18만4000명, 거제는 5만4800명, 부산은 27만7000명, 곡성은 900명에 그쳤다.

4곳의 공통점은 ‘높은 자동차·조선 의존도’다. 울산에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고 거제(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부산(르노삼성자동차), 곡성(금호타이어)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조선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조선업 생산능력은 2015년 이후 꾸준히 줄고 있다. 올해 2분기 자동차 생산능력은 1980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4곳의 제조업 취업자 수는 2015년 자동차·조선 구조조정을 기점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올해 상반기 취업자 수는 2015년 대비 평균 37.3%나 줄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위기를 덜 겪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자산업이 포진한 경기도 이천, 충남 아산·서산, 경남 창원 등은 올해 취업자 수가 늘었거나 감소폭이 크지 않았다. SK하이닉스 공장이 있는 이천의 경우 올해 취업자 수가 3만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LG전자가 있는 창원의 취업자 수도 5년 만에 가장 크다. 대형 제조업체가 기침만 해도 추락하고, 제조업이 활짝 웃으면 살아나는 지역경제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제조업의 부진은 고용에 먼저 타격을 준다. 이어 생산과 소비로 옮겨간다. 울산, 거제, 부산, 곡성의 생산능력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4곳의 올해 제조업 재고지수는 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이다. 소비도 얼어붙었다. 4곳의 올해 도소매업지수도 통계 작성 이후 최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각 지역은 경제 규모가 크지 않아 대표 제조업체에 기댈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갖고 있다”며 “정부는 제조업 위기 대응 방법을 찾고, 각 지역은 제조업체의 경쟁력 강화 또는 서비스업 전환 등을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전슬기 정현수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