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차로 20여 시간 달리면 부르키나파소와 국경을 맞댄 볼가탕가 지역이 나온다. 현지어로 ‘볼가’는 자갈, ‘탕가’는 돌을 뜻한다. 이름처럼 땅이 척박해 현지인도 살기 꺼리는 이곳에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우물을 파는 한국인이 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 기대봉사단 구승회(55) 이은미(52) 선교사다. 이들 부부의 사역지인 다뮤와 보코 2곳의 아동개발프로그램(CDP) 센터를 지난달 6일부터 10일까지 충남 천안 순복음참아름다운교회 안병찬 목사 등 기아대책 ‘회복’ 캠페인 모니터링팀 일행이 찾았다.
가수 동방신기 유노윤호와 팬클럽의 기부로 설립돼 ‘다뮤 윤호 교육센터’란 이름이 붙은 다뮤 CDP센터는 초등학교 4곳과 주택가 사이에 있다. 지난달 8일 찾은 이곳 초등학교들은 공립학교와 이슬람사원에 딸린 학교로 구성돼 있는데 교구라곤 낡은 책상과 칠판이 주였다.
반면 방과후교실을 운영하는 다뮤 CDP센터는 시청각 교육과 특별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선 초등학교 1~4학년 학생들이 텔레비전으로 영어 학습 동영상을 보며 큰 소리로 영어 문장을 따라 읽고 있었다. CDP에 등록된 어린이들은 주5일 영어 수학 등 기초 과목과 미술 음악 등 예체능 과목을 배운다. 매주 수요일엔 수요예배가, 금요일엔 어린이의 취향에 따른 특별활동이 이뤄진다.
보코 CDP센터는 볼가탕가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있다. 9일 오후 찾은 이곳에선 500여명의 학생들이 합창 줄넘기 태권도 종이접기 축구를 하고 있었다. 오락거리가 없는 이곳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 태권도반 수업에 참여한 피비레(14) 군은 “공격과 방어를 배울 수 있는 태권도가 재미있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질병으로 부모를 잃고 외삼촌 집에 얹혀산다는 피비레는 “영어 선생님이 돼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CDP 아이들의 삶에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가난의 굴레에 갇혀 꿈꿀 수 없던 아이들이 태권도와 축구를 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운다. 날품팔이로 생계를 해결하는 대신 상급학교에 진학해 진로를 고민한다. 다뮤 및 보코 CDP센터에서 꿈을 키우는 아이들은 700여명이다.
이 선교사는 “태권도 하나를 가르쳐도 가나태권도협회 강사를 부르고 지역대회도 출전하게 하는 등 동기부여를 하니 점차 자신감이 붙는 게 보인다”며 “아이들의 변화가 어른의 태도를 바꾸고 지역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도록 CDP에서 꿈을 심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볼가탕가에 온 구 선교사 부부는 교육뿐 아니라 식수 개발도 한다. 볼가탕가 내 45개 마을 중 우물이 있는 마을은 8~9곳에 불과했으나 부부가 8곳에 우물을 더 파면서 수인성 질병으로 고통 받는 주민들이 줄었다. 멀리 가서 물을 떠와야 하는 여성과 어린이의 삶도 개선됐다. 최근엔 지역교회 목회자와 협력해 독거노인들에게 쌀을 지원하는 사업도 한다. 농한기에 마을을 떠나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독거노인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동은 지역자치단체장과 추장의 신임을 얻을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구 선교사는 현지어로 추장이란 의미의 ‘보나바’로 불린다. 부부가 우물을 판 봉고 지역의 아인비사 피터 자치단체장은 “지역사회는 구 선교사의 사역을 지지하며 앞으로도 협력할 것”이라며 “우물뿐 아니라 교육으로도 지역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켰는데 향후 CDP센터를 더 지어 공립학교 교육이 활성화되도록 힘을 보태 달라”고 당부했다.
안 목사는 “CDP센터와 우물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을 보며 볼가탕가 지역이 곧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더 많은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꿈꿀 수 있도록 기도하고 후원하는 일에 우리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나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 팍팍한 삶에 윤활유 같은 CDP센터 특별활동
지난달 9일(현지시간) 가나 볼가탕가 지역의 보코 마을에서 만난 폴(12·사진 오른쪽)은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 곁을 지키며 집 앞에 앉아있었다. 흙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은 방 한 칸이 전부였다.
폴의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는 5년 전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후 시력을 잃었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폴은 하교 후 이웃의 농사일을 도우며 식량을 얻어와 생계를 꾸린다. 매일 해 뜨기 전 1시간 정도 걸어가 물을 길어온다. 할머니가 마실 물과 식사를 챙겨드리고 자신은 학교와 보코 CDP센터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매주 금요일 CDP센터에서의 특별활동은 팍팍한 삶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 폴은 “친구들과 그림 그릴 때 행복하고 혼자라고 느낄 때 슬프다”고 말했다. 이은미 선교사는 “외로움 타는 폴에게 염소를 기르게 해주겠다고 했더니 기특하게 집 옆에 우리를 만들었다”며 “장래희망이 의사인데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8일 다뮤 마을에서 만난 로즈와 로지나(5) 쌍둥이 자매도 부모 없이 외할머니와 생활하고 있었다. 한 평(3.3㎡) 남짓한 흙집은 한낮임에도 어둡고 눅눅했다. 외할머니 시실리아는 “지붕으로 빗물이 새서 우기 땐 어려움이 있다”며 “끼니는 학교나 이웃의 도움으로 근근이 해결한다”고 말했다.
다뮤 CDP센터에서 2년간 활동 중인 청년 기대봉사단 권인애씨는 “쌍둥이 자매는 인원 제약으로 CDP에 등록되진 못했지만 워낙 환경이 열악해 대기 아동으로 이름을 올렸다”며 “더 많은 아동이 CDP센터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관심을 갖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볼가탕가(가나)=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회복’ 캠페인] 가난의 굴레에 갇혔던 아이들 꿈이 자라기 시작했어요
입력 2018-12-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