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복지서 1조2000억 깎아 지역구 SOC 증액 ‘꼼수’

입력 2018-12-09 19:04 수정 2018-12-09 22:50

470조원에 이르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10년 전 금융위기 수준으로 재정지출을 늘리기로 했다. 다만 올해도 총 예산의 1% 수준(4조~5조원)은 국회 몫으로 돌아갔다. 국회는 소득주도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일자리·복지 예산을 1조2000억원 삭감했다. 대신 ‘표심(票心) 챙기기’에 돈을 넣었다. 정부안에서 삭감한 1조2000억원은 고스란히 지역구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으로 옮겨갔다. 또 여야는 개편하는 소득분배지표 발표 시기를 슬그머니 ‘2020년 총선 이후’로 연기하기로 했다.

국회는 지난 8일 새벽 469조6000억원의 예산안을 늑장 처리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470조5000억원에서 5조2000억원 삭감하고 4조3000억원의 새로운 사업예산을 추가했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회를 거치면서 가장 크게 쪼그라든 분야는 일자리·보건·복지 예산이다. 국회는 성과가 불투명한 약 4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사업에 칼을 댔다. 중소기업이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정부가 임금을 지원하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예산은 정부안보다 400억원 줄었다. 중소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청년이 목돈을 마련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예산도 정부안 대비 403억원 감소했다. 구직급여 확대 예산은 2265억원 깎이면서 시행 시기가 내년 1월에서 7월로 늦춰졌다.

이와 달리 여론을 의식한 예산은 대거 늘었다. 국회는 일자리·보건·복지에서 깎은 1조2000억원을 SOC 사업에 증액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에선 국립세종수목원 조성 예산이 정부안보다 253억원 늘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인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에선 부산 사상~하단 도시철도 건설 예산이 정부안 대비 20억원 증가했다. 이밖에 여러 의원의 민원성 사업(보성~임성리 철도, 서해안 복선전철, 도담~영천 복선전철 등) 예산이 1000억원씩 증액됐다.

또한 국회는 납세자들의 세 부담을 낮췄다. 조정대상 지역 내 2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부담 상한을 300%에서 200%로 조정했다. 세 부담 상한은 보유세(재산세+종부세) 총액이 전년 대비 얼마 이상 늘어나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국회는 1가구 1주택자가 주택을 장기 보유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세제 혜택은 늘렸다. 정부는 당초 준조합원의 경우 내년부터 농협, 수협 등 상호금융기관의 출자금·예탁금에 대한 과세특례를 받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국회는 이 시기를 2년 후로 미뤘다.

한편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 부대의견에 ‘가계동향조사 개편’을 총선 이후 발표하자는 합의사항을 넣었다. 정부는 올해 역대 최악의 소득분배지표가 나오자 가계동향조사 방식 등을 개편해 2020년 1분기에 첫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여야는 약 130억원에 이르는 개편 예산을 유지하되 소득분배지표 결과가 2020년 총선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발표 시기를 5월 이후로 늦췄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