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로 가는 길 찾기… 검찰, 박병대·고영한 보강 수사 착수

입력 2018-12-10 04:02
박병대(왼쪽)·고영한 전 대법관이 각각 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최현규 기자

검찰이 지난 7일 기각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 위해 보강 수사에 돌입했다.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를 위해서라도 두 전 처장의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검찰 내부는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인 것으로 9일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자 곧바로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反)헌법적 중범죄의 규명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검찰은 법원이 사실상 이 사건을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선에서 ‘꼬리 자르기’하려는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법원은 지난 10월 27일 임 전 차장을 구속하며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수사 경과 등에 비춰볼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의 상급자였던 두 전 처장에 대해서는 공모 여부에 의문이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임 전 차장의 영장심사를 맡기도 했던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 전 처장에 대해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 또한 고 전 처장에 대해 “공모 여부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두 전 처장이 임 전 차장의 범죄행위에 대해 “나는 몰랐고 아래에서 한 일이다” “사후보고를 받았다”고 해명한 점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이 전직 처장들과 임 전 차장의 공모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양 전 대법원장 수사도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검찰은 재판거래 등 일련의 사법농단 행위들이 ‘임종헌-박병대·고영한-양승태’로 이어지는 상하 명령체계를 통해 이뤄졌다고 본다. 두 전직 처장과 임 전 차장의 공모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못한다면 이 사건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죄를 묻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검찰이 영장 재청구로 방향을 정한 가운데 앞서 구속 기소된 임 전 차장의 재판은 10일 준비절차에 돌입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은 이날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향후 재판 일정을 조율할 계획이다.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준비절차여서 임 전 차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과 임 전 차장 측은 다수의 증거와 증인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전·현직 판사들이 증인으로 신청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임 전 차장 측은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진술할 예정이다. 임 전 차장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원이 두 전 처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며 모든 범죄를 사실상 임 전 차장이 주도한 것이라고 판단한 상황에서 임 전 차장의 진술 변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임 전 차장이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정식 재판은 2~3회의 공판준비기일을 거쳐 내년 1월쯤 진행될 전망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