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호 (9) 찬양을 트로트·로큰롤로 편곡 공연 큰 인기

입력 2018-12-11 00:06 수정 2018-12-11 09:30
박종호 장로(왼쪽 세 번째)가 콘서트장에서 나비넥타이와 멜빵바지를 입고 트로트와 로큰롤 등의 장르로 편곡한 찬양을 부르고 있다.

기존 앨범은 테너가 부를 법한 음역대가 높은 곡이 대부분이었다면 4집 ‘abba’에는 누구나 따라 부르기 좋은 곡들을 수록했다. 5집 ‘좁은 길’은 팝적 요소를 가미한 찬양을 담아 발매했다. 대중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박종호는 클래식’이란 인식이 강해서였다. 6집 ‘주를 위해’에선 이전처럼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웅장한 분위기의 찬양곡을 제작하니 반응이 다시 좋아졌다.

두 앨범에서의 색다른 시도는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지만 이후 앨범과 공연에서는 변화와 파격을 계속 시도했다. 1993년 ‘4,5집 기념 전국 투어 콘서트’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포로 구성된 ‘HIS 찬양팀’과 공연했다. 찬양팀은 공연 전 영어 랩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가사가 정말 은혜로웠다. ‘나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간 예수를 모르고 살았다. 음악이 좋아 대중가수를 지망했으나 주님을 만난 지금은 하나님만 찬양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를 ‘사탄의 음악’으로 매도하는 이들이 있었다. 전국 투어 전 교회에서 찬양집회를 했는데 “하나님의 성전에서 어떻게 사탄의 음악을 하느냐”는 반발이 나온 것이다. 영어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랩이란 음악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빚어진 촌극이었다. 이 일은 일파만파 커져 이후 8개 도시에서 예정된 공연이 취소됐다. 무대에 선 교포 청년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교회의 미숙한 대처에 절로 탄식이 나왔다.

당시는 랩을 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교회는 이런 흐름을 배격했다. 드럼도 교회에서 연주하지 못하게 했다. 피아노도 술집에서나 연주되는 악기로 취급받아 중세교회에서 배척당한 역사가 있다. 찬양에 있어 악기나 음악 장르가 중요한 건 아니다. 다루는 사람의 신앙과 가사가 중요한 것이다. 피아노나 힙합에는 죄가 없다. 클래식 음악만 교회에 알맞은 건 아니다. 일부 교회가 편협하게 문화를 대하는 게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났다.

교회가 찬양사역자를 홀대하는 현실도 나를 지치게 했다. 연예인이 간증할 땐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찬양사역자에겐 ‘찬양을 왜 돈 주고 들어야 하느냐’거나 마치 쌈짓돈 주듯 사례하는 교회가 적지 않았다. 그만큼 찬양사역과 문화선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때였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CCM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미국 오케스트라 편곡 전문가와 협업해 나온 7집 ‘Hymn 2’를 발매한 후 서울 숭의음악당에서 콘서트를 준비했다. 미국처럼 대형공연을 마련해 청년들에게 예수를 온몸으로 찬양하게 하고 싶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가수 하덕규의 공연 연주팀을 동원했다. 찬양을 트로트나 로큰롤로 편곡해 무대에서 춤추며 부르는 파격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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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3일간 5100석이 매진됐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파격 연출로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아 지상파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이 같은 성공에도 공연 때마다 계속 적자가 났다. 스폰서 없이 자비로 콘서트를 준비한 데다 예매하면 비용을 절감해줬는데 대부분의 표가 예매로 팔려서였다. 교회 안팎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이런 무관심과 빚의 압박이 반복되자 ‘교계 문화부흥’을 외치던 나도 서서히 지쳐갔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