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이도경] 어느 수능 담당기자의 오보 경위서

입력 2018-12-10 04:01

윤전기가 뱉어낸 따끈따끈한 ‘오보’가 트럭에 실려 전국 각지로 뿌려지고 있었다. 어둠이 깔릴 무렵, 편집국 사람들도 1면 기사에 문제가 있다는 걸 감지했다. 다급했던지 ‘어찌 된 일이냐’보다 ‘이제 어떻게 할래’라고 물어왔다. 포털 사이트에 올렸던 기사는 황급히 삭제했다. 욕설로 가득한 댓글들도 사라진다는 생각에 약간은 안도했던 것 같다. 경찰서 담당 기자에서 교육 담당으로 옮긴 첫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쳤던 사고는 몇 년 흐른 지금도 귓불 뜨거워지는 기억이다.

사교육의 아성에 맨몸으로 도전했던 대가였다. 먼저 수능 기사가 나오는 프로세스를 잠시 설명해야겠다. 수험생들이 1교시 국어 시험지 첫 장을 열면 출제 당국이 브리핑을 한다. 전반적인 출제 기조와 난이도를 설명하는 자리다. 1교시가 끝나면 곧바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상담교사단 브리핑이 이어진다. 교육 당국이 사교육 업체에 대응해 영역별로 뽑은 정예 교사 조직이다. 브리핑 뒤에는 입시 업체의 분석이 나온다. 그러니까 수능날 담당 기자는 입시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의 분석을 종합하는 역할을 한다.

돌이켜보면 객기였다. 당시 교사단은 영역마다 ‘예년 수준’ ‘평이했다’라고 분석했다. 아침에 진행된 출제 당국 브리핑과 궤를 같이했다. 하지만 메일함을 열어보니 입시 업체 분석은 달랐다. ‘까다로웠다’ ‘애 먹었을 것’ ‘시간 부족’이란 표현이 훨씬 많았다. 그래도 전국에서 뽑힌 선생님들이 직접 풀어보고 머리를 맞대 내놓는 분석 아니던가. 입시 업체 자료를 깡그리 무시하고 기사를 쓰기로 했다. 일부 다른 언론에서 어려웠다고 써도 꿋꿋했다.

시험이 종료되고 수험생들이 쏟아져 나온 뒤에야 깨달았다. 교사단만 신뢰하고 입시 업체는 제쳐놓은 ‘바보 기자’는 나밖에 없다는 것도. 똥줄 탄 건 기자만이 아니었다. 수능이 보통 시험이던가. 수험생 학부모를 비롯해 직간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수백만명에 달하는 대형 이벤트다. 교사단에 따져 물을 겨를도 없이 신문을 다시 만들다시피 기사들을 갈아엎었고 자정 무렵에야 작업이 마무리됐다. 다음 날 아침에 학생들이 가채점을 해보자 더 분명해졌다. 사교육은 맞고 공교육은 틀렸다.

이후 수능에서도 교사단과 입시 업체 분석이 엇갈릴 경우 결과는 비슷했다. 자연스럽게 수능 당일 교사단 브리핑은 시간 낭비 혹은 혼선만 주는 ‘쓸데없는 친절’로 치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몇 해 뒤 입시 업체가 수능 당일 내놓는 전망과 실제 수능 결과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측정해 봤다. 일부 업체는 영역별로 오차가 1~2점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비결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이거(난이도 분석) 목숨 걸고 해요. 노하우도 쌓였죠. 봉사활동 수준인 선생님들과 같겠어요?”

분석 결과를 기사로 썼다. 업체 홍보가 될까 봐 업체 이름을 이니셜로 처리했다. 공교육의 분발을 촉구하는 취지였는데 “가장 정확한 A사가 어디냐”는 씁쓸한 문의만 학부모들로부터 이어졌다. 그야말로 사교육의 세상이다. 올해 교사단도 국어에 대해 ‘난도가 높았다고 평가받는 지난해 수능과 비슷했다’고 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올해 국어는 현 수능 체제 도입 후 최강의 난도였다. 교사단 설명대로 기사를 쓴 다른 매체 후배 기자는 “(교사단은) 뭐 하러 브리핑하죠? 이제 저도 다시 안 가려고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수능 난이도를 논하는 기사를 쓰려면 문제를 직접 풀어보고 쓰라는 요구는 수용하기 어렵다. 야구 기사 쓰려면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대신 믿고 인용할 만한 유능한 소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공교육 영역 안에 있었으면 한다. 사교육 좀 때려잡으라며 교육 당국에 일갈하던 기자는 대입 시즌에는 사교육 불안 마케팅에 동참하는 ‘유체이탈’을 겪는다. 시험이 어려웠으면 ‘불수능엔 전략 중요’, 쉬웠으면 ‘변별력 없을 땐 전략이 당락 좌우’라고 쓴다. 사실 같은 소리다. 기사에는 사교육 업체로 연결되는 보이지 않는 링크가 걸려 있다. 올해도 사설 입시기관의 입시 설명회마다 인산인해였다. 입시 설명회장 쫓아다니며 자녀 미래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학부모들도 비슷한 심정 아닐지.

이도경 사회부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