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결혼해 잘 살라던 아빠가…” 유족들 망연자실

입력 2018-12-05 19:26
4일 오후 8시30분께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백석역 3번 출구 인근에서 발생한 온수배관 파열 사고로 주변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다. 뉴시스

“돌아오는 새해 4월, 결혼을 앞두고 아빠는 ‘너희 둘만 잘 살면 된다’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에서 발생한 온수관 파열 사고로 숨진 손모(69)씨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차량을 운전해 귀가하던 도중 변을 당했다. 손씨는 매주 1~2번은 꼭 큰딸 내외 또는 작은 딸과 저녁식사를 했다고 한다. 사고 당일에도 결혼을 앞둔 작은 딸, 예비 사위와 백석역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오후 8시30분쯤 환한 표정으로 헤어졌다. 하지만 10여분 뒤 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의 희생자가 됐다.

손씨의 차량은 사고 발생 후 약 2시간 만에 발견됐다. 손씨는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뒷좌석에서 숨져 있었다. 폭발 당시 심한 충격이 가해진 탓인지 차량 앞유리 대부분이 깨져 있었다. 유리가 깨지면서 차로 뜨거운 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이 때문에 중화상을 입은 손씨가 뒷좌석으로 탈출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난방 공급 배관이 터진 것은 올겨울 들어 첫 한파주의보가 발령됐던 지난 4일 오후 8시41분쯤이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41명이 부상을 입었다. 도로에서 갑자기 치솟은 뜨거운 물에 사람이 다수 희생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도로를 걷던 행인, 차량을 운전해 귀가하던 운전자는 물론 구조에 나선 소방관들까지도 2.5m 지하에서 아스팔트를 뚫고 치솟은 섭씨 100도가 넘는 난방 온수에 숨지거나 화상 등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한 시민은 “수십m 높이까지 뜨거운 물기둥이 솟아올랐고 수증기로 인해 주변이 자욱했다”며 “‘도와주세요’ ‘어서 빠져나오세요’라는 비명과 구조대의 외침에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화산 폭발처럼 솟아오른 난방용수는 쓰나미처럼 순식간에 도로를 덮쳐 인근 상가 상인들과 행인들은 상가 건물과 인근 아파트 고층 등으로 대피해야 했다.

이 사고로 인근 3개 아파트 단지 2861가구에 열 공급이 중단돼 주민들은 전기장판과 온열기 등에 의지한 채 밤새 추위에 떠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난방공사 측은 밤샘 복구작업을 펼쳐 사고 발생 10시간 만인 5일 오전 7시55분쯤 임시복구를 마쳤으나 완전복구에는 4∼5일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추위에 아이들과 한숨도 못자고 떨었다는 한 주민은 “난방공사는 사고 발생 3시간이 지난 밤 12시가 다 돼서야 주민들에게 전기장판을 나눠줬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이번 기회에 낡은 배관들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양시는 5일 유은혜 사회부총리와 이재준 고양시장, 시 재난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해 난방배관 전수조사를 벌이는 한편 지반침하 등도 살펴보기로 했다. 시는 피해자에 대한 물적·법률적 지원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고양=김연균 기자 y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