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서 돈다발·금괴… 고액·상습체납자 7157명 공개

입력 2018-12-05 19:16

‘부동산 광풍’ 덕에 매매 차익으로 10억원 이상을 챙긴 A씨는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부동산을 처분해 받은 수표 17억원을 88회에 걸쳐 현금화했다.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 은행만 44곳이나 됐다. 국세청의 자금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꼼수였다. 국세청은 부동산 매매기록 등을 통해 A씨의 자금 은닉 정황을 포착했지만 체납액 추징은 쉽지 않았다. 가택을 수색했지만 숨겨둔 돈을 찾는 데 실패했다.

탐문조사를 하던 국세청은 A씨가 사위 명의로 한 은행에 대여금고를 개설한 사실을 확인했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대여금고를 뒤졌더니 현금 1억6000만원과 미화 2억원이 나왔다. A씨는 가산세까지 체납액 8억3000만원을 뒤늦게 납부했다.

고가의 오피스텔을 팔고도 양도세를 내지 않고 버티던 B씨는 거실에 비밀 수납장을 만들었다. 국세청은 경찰 입회 아래 압수수색을 해 비밀 수납장에 있는 현금 7000만원(사진), 1억6000만원 상당의 금괴, 명품시계 등을 찾아냈다. 증여세를 체납한 C씨의 옷장에서는 현금 8000만원과 수표 180장(1억8000만원)이 숨겨져 있었다. 수표는 옷장에 걸려 있는 양복 안에서 나왔다. C씨가 조카 명의 차명계좌에 숨겨둔 2억5000만원도 들통이 났다.

국세청은 올해 신규 고액·상습체납자 7157명(개인 5021명, 법인 2136개)의 명단을 5일 공개했다. 공개 대상은 2억원 이상의 국세를 1년 이상 내지 않은 개인이나 법인이다. 올해 공개된 체납자가 내지 않은 세금은 5조2440억원에 이른다.

공개된 명단에는 양도세 등 30억9000만원을 체납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포함됐다. 전 전 대통령은 검찰이 그의 가족 소유 재산을 공매 처분하는 과정에서 양도세를 부과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매로 자산이 강제 처분되더라도 과세 당국은 이를 양도로 보고 세금을 매긴다.

재판 청탁 명목으로 100억원의 부당 수임료를 받은 혐의로 복역 중인 최유정 변호사도 종합소득세 등 68억7000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 변호사는 상습도박죄로 구속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거액의 수임료를 챙겼다.

국세청은 올해부터 체납자 명단을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 화면을 지역·업종별로 구성했다. 지금까지 고액의 세금을 내지 않아 명단이 공개된 고액·상습체납자는 올해 처음 이름을 올린 이들을 포함해 5만2000명이나 된다. 국세청은 체납자가 숨긴 재산을 제보해 세금을 징수하는 데 도움을 준 신고자에게 최대 20억원의 포상금을 준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